이우환 작가를 처음 안 것은 1970년대 한국의 건축'미술지 '공간'과 일본미술전문지 '미술수첩'을 통해서였다. 그 후 1978년과 79년 대구현대미술제에 초대되어 그를 직접 만나게 됐다. 당시 한국미술계는 서울대 학맥과 홍익대 학맥으로 나누어 새로운 현대미술에 대한 갈증을 요구받고 있었다. 홍익대 중심의 미니멀아트에 논리적 이론을 제시한 사람이 바로 재일 작가이며 다마미술대학 교수인 이우환 작가였다.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이우환 작가는 대구현대미술제에 참여하기 위해 일본의 신세대 작가 노마 등과 함께 대구에 도착했고 약전골목과 종로 근처에서 만남을 가지며 전시기간 동안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때 청년 작가로 참여하게 된 나에게 이우환 작가는 우상과 같은 존재였다. 일거수가 관심의 대상이었으며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현자의 미학을 넘어 성인의 말씀같이 느껴졌다. 지금도 기억나는 '빈 공간의 미학적 해석'은 귓가에 울림으로 남아 있다. 몇 년 뒤 한국미술계는 이우환 유파라 해도 과언이 아닌 단색 모노크롬 미술가들을 낳았다.
올 전반기 한국미술시장에서 이우환 작가는 김환기, 박수근 작가를 밀어내고 거래 금액 1위 작가라는 막강파워를 자랑했다. 지금은 프랑스 베르사유궁에서 전시회를 갖고 있어 세계적 반열에 오른 그의 위상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상찬에도 불구하고 현재 대구에서 거론되고 있는 이우환 관련 미술관 건립은 분명 재검토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언론을 통해 밝혀진 바에 따르면 이우환 작가는 대구시에서 건립을 추진하고 있는 본인 이름의 미술관에 시큰둥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구시 문화예술 발전을 위한 우선 사업 순위에서도 더 중요한 것이 많기 때문이다. 2011년 개관한 대구미술관은 100% 전시장으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사설 예식장이 함께 있어 반쪽 미술관이 되어 있으며 예산 부족으로 훌륭한 소장품조차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이우환 관련 미술관이 대구문화예술회관 인근에 건립되면 일본을 비롯해 많은 국내외 관광객들이 올 것이라는 발표 등도 현실성과 동떨어진다. 이것은 대다수 동시대 미술작품이 뜨거운(hot) 감성문화가 아닌 차갑고(cool) 이지적 개념예술이기에 한정된 관람객들만 즐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 아무리 훌륭한 작가라도 지역성과 정체성을 벗어나면 시민들과 외국 관람객들을 수용하지 못한다. 우리가 뉴욕이나 런던, 파리에 가는 이유는 그 도시와 지역의 스토리를 보기 위한 것이며 베이징, 상하이, 도쿄, 교토 등을 방문해서도 각 도시의 고유성으로 무장된 특성을 중심으로 살피기 때문이다.
그동안 대구시가 추진해온 문화 행정이 하드웨어에 치중하는 전시 행정이 아니었는지 묻고 싶다. 내륙도시 대구는 우리의 특징과 정체성을 가진 이야기와 공간으로 세계인을 불러 모아야 한다. 혹자는 대구에 자랑할 만한 국제적 예술가나 명소가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는 우리 것을 너무 모르거나 소홀한 것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된다. 대구에는 흙속의 진주보다 더 빛나는 문화예술인이 많다. 우리가 외국여행을 할 때 고유한 역사와 정체성을 가진 문화 예술가들에게 열광하는 이유를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최근 권영진 신임 대구시장이 발표한 이우환 관련 미술관 건립 재검토가 아주 타당한 결정으로 볼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만일 문화예술 예산이 새로 짜인다면 아시아의 천재화가 이인성과 이쾌대, 김용조 등을 아우르는 대구근대미술관 건립에 사용될 필요성이 있다. 근대미술관에 동양미술의 지보 석재 서병오와 교남시서화회 작가 특별관을 묶어 우리의 자존을 세계에 알려야 한다. 이는 대구의 훌륭한 작고 작가의 문화사적 진실을 끄집어내 미래의 후손에게 알려줄 의무와 책임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이다. 신임 시장의 혜안과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김진혁/화가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이재명 "TK 2차전지·바이오 육성…신공항·울릉공항 조속 추진"
대법원, 이재명 '선거법 위반' 사건 전원합의체 회부…노태악 회피신청
경선 일정 완주한 이철우 경북도지사, '국가 지도자급' 존재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