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오육십 대에 이른 한국 남성들에게 소설가 '방인근'(1899~1975)은 낯 뜨거운 도색소설 전문작가로서 기억되고 있다. 그들은 어두컴컴한 헌 책방 한쪽에 처박혀 있던 방인근의 소설을 몰래 사서 친구들과 돌려 읽으면서 청춘기의 성적 환상을 채우곤 했다. 그러나 여기에는 기묘한 기억의 단절이 존재한다. 적어도 해방 직전, 식민지 시기 동안 조선의 독자들에게 방인근은 그와는 다른 이미지로서 수용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설가 방인근은 일본의 유명 사립학교 아오야마(靑山)학원을 졸업한 엘리트였으며, 개인 재산을 털어서 이광수와 함께 문학잡지를 창간할 정도로 순문학 진흥에 열정적인 인물이기도 했다. 일본 유학생 출신으로 순문학에 열정을 지녔던 인물이 왜 해방 이후 도색소설 전문작가가 돼버렸던 것일까.
물론 방인근이 식민지 시기 동안 가난을 무릅쓰면서까지 순문학에 매진했던 것은 아니었다. 식민지 시기 동안 그는 오히려 대중 연애소설 작가로서 두각을 드러내었다. 대중적 인기의 척도라고 할 수 있는 신문 연재소설을 연이어 맡아 대중적인 연애소설을 발표하였다. 그중 하나가 '마도(魔都)의 향불'(1932)이다. '마도의 향불'은 1932년 경성을 중심으로 신청년들의 애정 풍속도를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시련을 겪으면서도 사랑을 지키고 성취해 나가지만, 그 너머 펼쳐지는 1930년대 경성의 풍경은 음울하고 황량하다.
미츠코시(三越) 백화점과 조지야(丁子屋) 백화점, 거리를 밝히는 일본 인단(仁丹) 광고판, 황금정(黃金町, 지금의 서울 을지로)에 가득한 일본어 간판, 일본 창가를 즐겨 부르는 조선 기생들. 1932년의 경성은 인구 60만이 넘는 대도시였지만, 제국의 자본에 철저하게 종속당한 식민지의 음울한 운명을 그대로 지니고 있었다. 이 무력한 식민지의 상황 속에서 조선의 청년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당연히 아무것도 없었다. 경성제대 법학과 출신의 영철은 취업도 하지 못한 채 별다른 이상이나 의식 없이 떠돌고, 한때 사회 개혁의 이상을 품고 수감 생활까지 했던 택수는 도박에 빠져 살인까지 저지른다. 순수한 사랑을 꿈꾼 여학생 애희는 세력가에게 정조를 유린당하고, 여학생 출신으로 기생이 된 명자는 아편에 중독되어 참혹하게 삶을 마감한다. 사랑이건, 사회적 신념이건 그 무엇이건 간에 제아무리 순수한 열정도 여기서는 쉽게 훼손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것이 제국에 종속당한 식민지의 운명이었다.
대중 연애소설 역시 이 운명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대중 연애소설에서조차 조선의 연인들은 사랑에만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그들은 대중적이고 통속적인 사랑을 하면서도 끊임없이 민족의 운명과 사회적 의무를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것이 식민지 연인들에게 부과된 피곤한 현실이었고 운명이었다. 적어도 식민지 시기 동안 방인근은 통속적인 대중 연애소설에 손을 대면서도 민족이나 사회에 대한 신념 역시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찾아온 해방의 어수선함 속에서 그는 삶과 문학의 모든 방향성을 상실하게 된다. 맞서야 할 적, 지켜야 할 민족의 운명이 갑자기 소멸되었고, 그와 더불어 찾아온 것은 지독한 생활고였다. 이 난감한 현실 속에서 그는 신념을 접고, 생활을 선택한다. 도색소설의 창작이 바로 그 결과이다. 급변했던 역사의 흐름이 방인근의 신념을 망가트렸는지, 아니면 그 급변하는 흐름을 견뎌낼 정도로 마음의 힘이 강하지 못했던 것인지 누구도 알 수가 없다. 단지, 대부분의 식민지 작가들처럼 그 역시 너무 쉽게, 그리고 너무 빨리 현실과 타협했던 것만은 분명했다.
정혜영 대구대학교 기초교육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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