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신호와 소음

입력 2014-07-08 10:50:07

진주만 기습 이전에 이를 암시하는 무수한 징후가 있었다. 기습 한 달 전인 1941년 11월 일본 해군은 무선통신 호출신호를 계속 바꿨다. 일본 함대가 중국과 동남아시아 해안에서 멀리까지 기동하는 정보도 자주 포착됐다. 11월 중순에는 일본 해군의 무선 통신이 아예 사라졌다. 기분 나쁜 침묵이었다. 무언가 있는 게 분명했다. 하지만 당시 정보분석가들은 이를 일본 함대가 일본 근해에 있으며 무선 통신 말고 다른 방식으로 본국과 통신하는 것으로 결론 내렸다. 그러나 일본 함대는 은밀히 하와이에 접근 중이었다.

9'11 테러도 마찬가지다. 이미 비행기를 이용한 테러 가능성에 대한 경고가 최소한 10건이나 있었다. 그러나 무시됐다. 미국과 캐나다의 공동 방공기구인 북미항공우주방위사령부(NORAD)는 납치된 항공기가 미 국방부 청사 펜타곤에 돌진하는 시뮬레이션을 제안한 바 있었지만 기각됐다. '너무 비현실적'이란 이유에서였다. 미국 정보기관은 설령 그런 테러가 벌어진다 해도 비행기 납치는 미국 내 공항이 아니라 외국 공항에서 이뤄질 것으로 판단했다.

이들 두 사건의 공통점은? '신호'와 '소음'을 구분하지 못해서 당한 참사라는 것이다. 현실 세계에서는 온갖 정보가 넘쳐난다. 인간은 이런 정보들이 어떤 유용한 사실을 알려주는 '신호'인지, 아무 의미도 상호 연관도 없는 '소음'인지 가려내지 못하는 게 보통이다.

이렇게 신호와 소음의 더미에 빠질 때 인간은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이 '가용성 휴리스틱'(가용성 단순추론)이라고 이름붙인 심리적 지름길을 택한다. 가용성 휴리스틱이란 자기가 경험했거나 들은 정보를 중심으로 판단하는 것으로 정확한 판단을 흐리게 하는 인지적 편향이다. 인간은 있을 법하지 않은 것을 상상해내기 어렵다는 얘기다.

영국 일간 텔레그라프의 보도에 따르면 각국의 국제공항에서 스마트폰과 신발에 대한 검문이 강화되고 있다고 한다. 미국행 직항 노선을 보유한 국가들에 대한 미국 보안 당국의 공항 검문 강화 요청에 따른 것이다. 미국 보안 당국은 9'11 테러를 저지른 알 카에다가 보안 검색에서 적발되지 않은 '스마트폰 폭탄' 등 신형폭탄을 이용한 항공기 테러를 감행할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과연 이번에는 신호를 신호로 파악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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