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보건대 인당박물관 변미영 초대전

입력 2014-06-10 07:21:31

산수화로 담아낸 무릉도원

변미영 작
변미영 작 '유산수'(遊山水). 판넬 위에 혼합재료 27.5x45.5㎝.
유산수(遊山水) 15x15㎝
유산수(遊山水) 15x15㎝
유산수(遊山水) 91x72.5㎝
유산수(遊山水) 91x72.5㎝

산수화를 통해 자연에서 즐긴 사색을 현대적 감각으로 풀어내는 작가 변미영 초대전이 다음 달 6일까지 대구보건대학교 인당박물관에서 열린다.

변 작가의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는 산수(山水)다. 이는 변 작가가 동양화를 전공한 영향도 있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노장사상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낙(樂)산수에서 시작한 그녀의 산수 기행은 휴(休)산수, 화(花)산수를 거쳐 지금은 유(遊)산수의 세계에 머물러 있다. 산과 꽃으로 대변되는 그녀의 작품은 자연을 벗하며 자유롭고 유유자적한 삶을 즐기고 싶은 작가의 마음이 투영된 산물이다.

변 작가에게 산수는 심미의 대상인 동시에 숭배의 대상이다. 인간에게 자연은 아름다움의 대상이자 경외감을 느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의 산수에는 철학이 스며 있다. 이른바 노장사상으로 대변되는 자연철학이다. 삼라의 모든 생명체가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모습은 작가 변미영이 그림을 통해 추구하는 이상이다. 이를 위해 그녀는 동양의 자연관과 민화의 조형성을 융합해 기존 산수화에서는 엿볼 수 없는 차별화된 세계를 만들어냈다. 특히 민초들의 소망이 담긴 민화에서 차용한 이미지는 자연을 갈망하는 현대인들의 염원을 반영하며 현대인들과 자연을 이어주는 매개 역할을 한다.

변 작가가 캔버스 위에 산수를 풀어내는 방식은 독특하다. 그녀는 새로운 작업을 갈구하다 목판 기법과 서양화를 접목시킨 그녀만의 독특한 작품 방식을 만들어냈다. 변 작가는 합판 위에 아크릴 물감으로 15회 이상 다양한 색을 올린 후 조각칼로 긁어내며 드로잉을 한다. 비우는 행위의 일종인 긁어냄을 통해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하지만 작업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화면 위에 아크릴 물감을 또다시 칠하고 닦아내기를 수십 차례 반복한다. 전통 채색 방법에서 영감을 받은 이런 작업 방식은 작품에 깊이감을 더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작품에 나타난 붉은색은 단순한 붉은색이 아니다. 스펙트럼처럼 푸른색, 노란색 등을 품고 있는 붉은색에서는 오묘한 느낌이 감돈다. 또 색이 시각적으로 분산되는 현상은 관람객들의 상상을 유도하며 초현실적인 세계로 인도한다.

변 작가가 많은 그림 주제 중에서 산수에 천착하는 것은 산업화'도시화로 현대인들은 자연과 멀어졌고 급기야 자연을 잃어버린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자연을 잃어버린 것은 단순히 산수를 즐기지 못하는 차원이 아니라 정서의 상실을 의미한다. 변 작가가 산수를 그리는 이유는 자명하다. 바로 자연을 잃어버린 현대인들에게 그림을 통해서라도 자연을 돌려주고 싶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변 작가는 "내가 작품을 통해 나타내려는 무릉도원(이상)은 삶의 도피처가 아니라 현실과 이상을 넘나들며 비통한 현실을 구제하는 공간이다. 꿈은 현실과 화합했을 때 가장 강한 생명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장자는 인생을 소풍에 비유했다. 장자 철학이 지향하는 '소요유'(逍遙遊'멀리 소풍 가서 노닌다)는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묻는 또 다른 표현이다. 장자는 "삶은 그 자체가 목적이기 때문에 삶이라는 여행을 즐기라"고 말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작가 변미영은 자신의 작품을 통해 장자의 소요유를 실천했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녀는 산수에서 안식인 휴(休)와 즐거움인 낙(樂), 아름다움인 화(花), 자유롭게 노니는 유(遊)를 발견하고 이를 예술로 승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변 작가는 그림을 통해 현실 도피가 아니라 아픈 현실을 적극적으로 껴안으며 이상을 만들어가자고 말한다. 변 작가가 제시하는 길 끝에는 힐링의 세계가 자리 잡고 있다. 장자 제물론에는 '도행지이성'(道行之而成)이라는 말이나온다. 길은 걸어가는 데서 완성된다는 의미로 길은 우리가 만들어가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느림의 미학이 강조되면서 장자 읽기가 유행이다. 때 이른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시기, 변 작가의 작품을 보면서 삶의 여유를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그것은 변 작가가 말하는 길을 함께 만들어가는 단초가 될 것이다. 인당박물관이 지역 출신 예술가들을 지원하기 위해 마련한 이번 전시에서 변 작가는 신작을 포함해 80여 점의 작품을 선보였다. 은은하지만 단조롭지 않은 색감 위에 금박과 은박을 붙인 신작은 기존 작품에서는 맛볼 수 없는 화려함과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한편 변 작가는 계명대 미술대학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1995년 대구대에서 조형예술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고금미술회, 대구미술대전, 대구여성미술대전, 영남미술대전, 삼성현대미술대전 등에서 초대 작가 및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국내에서 다수의 초대전을 가졌으며 홍콩아트페어, 상하이아트페어, 스위스 취리히아트페어, 한국국제아트페어(KIAF), 요코하마국제아트페어 등에도 참여했다. 053)320-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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