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읽기] 윤선도가 꾸민 '바다 위의 정원' 묘한 여운의 근원은

입력 2014-06-07 08:00:00

보길도 기행/ 김나흔 글, 구자호 사진/ 현실문화 펴냄

광주일보 기자 출신인 저자 김나흔은 남도 지역 역사'인문'사람들의 이야기를 꾸준히 수집해 글로 풀어내고 있는 프리랜서 작가다. 책에서 읽는 재미뿐만 아니라 보는 재미도 느끼게 해 주는 사진은 구자호 작가가 찍었다. 구 작가는 조선일보 사진부장 출신으로 지금은 오는 9월 대구에서 열리는 대구사진비엔날레 운영위원장으로 있다.

기행의 목적지는 전라남도 완도군 보길도다. 고산 윤선도의 땅이다. 보길도는 바다 위의 정원이다. 윤선도가 우주의 운행 원리를 바탕으로 섬 전체를 정원 삼아 조성한 고산원림이 자리해 있다. 또 정자리 고택의 정원, 섬 곳곳에 있는 낮은 돌담길 풍경 등이 보길도를 하나의 정원으로 꾸민다.

보길도에는 절경도 많다. 금강산 삼일포와 비교되는 황원포, 발걸음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솔섬의 해넘이, 둥글고 큰 돌들이 꼭 공룡알 같은 보옥리 공룡알 해변, 파도가 칠 때마다 장엄한 자연의 화음을 연주하는 예송리 갯돌들 등이다.

보길도는 묘한 역사의 흔적도 담고 있다. 고산 윤선도(1587~1671)는 남인을, 우암 송시열(1607~1689)은 서인을 대표해 치열하게 당쟁을 펼쳤다. 그러다 송시열의 탄핵으로 윤선도는 제주도로 유배를 떠난다. 가던 길에 풍랑을 만나 도착한 곳이 바로 보길도다. 윤선도는 죽을 때까지 30여 년 동안 보길도에 머무르며 '어부사시사', '오우가' 등 주옥같은 한글 시가를 남긴다. 이후 송시열도 제주도 유배 길에 오른다. 송시열은 가던 길에 보길도에 잠시 들러 섬 동쪽 끝자락 해안 절벽에 자기 신세를 한탄하는 시구를 남긴다. 지금도 남아있는 '송시열 글씐바위'다.

이 밖에도 보길도에는 이야깃거리가 많이 있다. 남은사와 북바위 전설, 기섬과 갈마섬과 아기 장수 전설 등 옛이야기가 많다. 또 보길도는 소설가 임철우가 썼고 영화로도 만들어진 '그 섬에 가고 싶다', 시인 강제윤이 쓴 '보길도에서 온 편지', 김민환 전 고려대 교수가 쓴 소설 '담징' 등 여러 작품의 배경이 됐다.

섬의 서사를 생동하게 만드는 것은 섬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주변 다른 섬들과 달리 보길도는 일거리가 끊이지 않는 곳이다. 전복 양식, 멸치잡이 등 일거리가 늘 있고, 그래서 노인들도 일을 해야 할 정도다. 도시로 떠났던 젊은이들도 고향으로 다시 돌아오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삶과 노동의 풍경도 보길도의 한 매력이다.

책은 여느 여행서처럼 교통편, 맛집, 잠잘 곳, 산행 코스, 해수욕장, 체험거리, 특산물 등 각종 정보도 담고 있다. 저자가 섬 구석구석으로 직접 다니며 체험을 통해 얻은 정보들이다. 특히 표와 지도까지 곁들여 친절하게 쓴 산행 코스 소개가 정성스럽다.

238쪽, 1만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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