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지방선거 투표일이다. 밤이 되면 앞으로 4년간 지방자치를 이끌 단체장과 지방의원들의 당선 윤곽이 드러나게 된다. 세월호 참사라는 비통함으로 큰 목소리 한번 제대로 내지 못한 채 선거 운동에 전념해온 후보자들 입장에서는 희비가 엇갈리는 순간이다. 당선자에게는 뜨거운 축하를, 낙선자에게는 진정한 격려를 보내자.
이번 선거는 대구로서는 사뭇 의미를 부여할 만한 선거였다. 우선 1995년 자치단체장 선거 부활 이후 선거 때마다 반복된 낙하산 공천이 사라졌다. 이름도 성도 모르는(?) 후보가 선거일 한, 두 달을 앞두고 공천을 받아도 특정 정당 후보란 이유만으로 지지하던 묻지마식 투표 관행도 상당히 자취를 감추었다. 지난 대선 때 여야 대선 후보가 공약으로 내걸었던 '공천 폐지'는 지켜지지 않았지만, 보완책으로 '상향식 공천'이 도입된 때문이다.
이에 따라 경북도지사 경선은 후보들이 중도 사퇴했지만, 대구시장 경선은 어느 때보다 뜨거운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경선 과정에서 억측과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큰 문제없이 권영진 후보가 새누리당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됐다. 또 다른 변화는 시장 선거가 본선까지 경합 구도 속에서 치러졌다는 점이다. 3선 국회의원 출신에 민주당 최고위원까지 지낸 김부겸 전 의원이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로 출마한 것이 원인이다. 김 후보는 지난 총선에서도 수성갑 지역에 민주당 후보로 출마해 40%가 넘는 득표를 하며 대구 선거 풍토 변화의 불씨를 지폈다.
1995년 지방선거를 빼고 대구시장 선거는 항상 무미건조했다. 시장 후보는 마치 특정한 스펙이 있는 것처럼 특정고 출신에 행정고시를 거친 고위 관료가 새누리당의 하향식 공천을 받았다. 후보가 정해지면 유권자들은 당연한 듯 새누리당 후보에게 주저 없이 표를 몰아줬다. 이 과정에서 대구를 이끌 수장을 뽑는 선거지만 지역의 현안이나 공약 등은 선거전에서 전혀 주목을 받지 못했다. 특정 정당을 향한 묻지마식 투표는 시장뿐 아니라 기초단체장과 지방의원 선거까지 고스란히 반복됐다. 10여 년 이상 되풀이되는 이러한 현상을 두고 지역 정가에서는 대구 시장은 왕후장상(王侯將相)의 씨를 타고나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돌 정도였다.
새누리당 후보로 선출된 권영진 후보는 고시 출신도 아니고 특정고 출신도 아니다. 그리고 밀실 공천이 아니라 상향식 경선을 통해 시장 후보 자격을 거머쥐었다. 기존의 새누리당 대구시장 후보의 스펙에서 일탈한 인물이다. 권 후보는 새누리당 공천이 당선이라는 역대 선거와 달리 본선까지 야권 후보와 치열한 세 싸움을 벌였다는 점에서도 기존 새누리당 후보와는 다르다.
물론 본선 경합은 수도권 3선 의원 출신이란 보장된 자리를 버리고 고향의 변화를 외치며 대구로 귀향한 김부겸 후보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어느 후보가 승자가 되든 대구 시민의 입장에서는 오랜만에 시장 후보가 경합하는 선거 같은 선거전을 지켜봤다.
그러나 여전히 조금의 유감은 있다. 여당인 권 후보는 물론 야권 주자인 김 후보까지 박근혜 마케팅을 들고 나왔다. 물론 절박한 선거전에서 표심을 조금이라도 더 얻기 위한 심정은 충분히 헤아릴 수 있다. 한쪽은 세월호 사건으로 위기에 몰린 박 대통령을 구하자는 전통적인 친박 마케팅을, 또 다른 한쪽은 박 대통령과의 친분을 내세우며 표심을 호소했다.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 지난 2012년 총선까지 대구경북에서 치러진 총선이나 지방선거는 인물이나 공약이 사실상 사라진 선거였다. 지역 유권자들은 한동안 이회창 후보 대통령 만들기에, 다음에는 박근혜 후보의 대선 당선을 위해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에 아낌없는 지지를 보냈다.
지방선거는 철저히 지역에 눈높이를 둔 선거다. 지역을 이끌 적합한 인물을 뽑고 선거 과정을 통해 지역의 문제점을 짚고 앞으로 지역이 살아나갈 먹거리를 다시 생각하고 준비하는 시기다. 새누리당과 무소속 후보 간 혼전을 거듭한 부산시장 선거에서 가덕도 신공항이 최대 현안으로 떠오른 것도 이러한 이유다.
대구는 대구다. 그리고 지방선거는 지방선거다. 다음 지방선거나 총선은 이번 선거를 거치면서 조금 더 '지역스러운' 선거가 될 가능성이 커졌다. 선거 이슈의 중심에 지역의 미래가 있고 유권자의 눈높이도 중앙 정치의 역학 구도나 차기 대선이 아닌 지역 발전에 맞춰지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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