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루미 선데이' 흐르는 도나우 강…냉전 종식 레이건 동상 "깜짝"
도나우 강을 사이에 두고 발전해온 두 도시 '부다'와 '페스트'가 19세기 후반 합쳐진 것이 우리가 아는 부다페스트다. 이 때문에 부다와 페스트는 서로 다른 매력을 드러낸다. 왕이 살았던 부다에는 왕궁과 성당 등 역사적 건축물이 있고, 상인의 활동 무대였던 페스트는 경제 거점으로 자리 잡았다. 그래서 부다엔 중후하고 우아한 매력이, 페스트는 언제나 젊음과 활기로 넘친다.
전체적인 풍경은 이렇다. 아르누보, 바로크, 네오클래식 양식의 건축물 사이로 노란색 트램이 달리고, 번화한 거리는 나뭇잎 무성한 공원과 뒤섞여 있다. 도나우 강을 가로질러 부다와 페스트를 처음으로 연결한 세체니 다리는 그 풍경에 묵직함을 더한다. 밤이 되면 낮과는 전혀 다른 면모에 다시 한 번 감동받게 된다. 유럽 3대 야경이라 손꼽히는 부다페스트는 그 명성에 걸맞게 밤이면 화려한 빛으로 물들어 마음을 사로잡는다.
◇우아한 합스부르크 제국의 수도
이곳의 최고 명소는 언덕 위에 자리한 부다 성이다. 13세기에 지어진 부다 성은 헝가리 역사의 상처가 묻어나는 곳이다. 부다페스트는 전성기에 빈과 함께 합스부르크 제국의 공동 수도였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폐허와 상처로 뒤덮이고, 50년 동안 지속된 공산주의 통치하에 웅대한 건물 대부분이 파손되는 등 많은 고초를 겪었다. 성과 성당엔 이런 침략과 지배의 상처가 오롯이 남아있다. 특이한 것은 성채의 기능이 보통의 요새와는 달랐다는 점이다. 요새는 헝가리인의 독립운동을 감시하고 진압할 목적으로 만든 합스부르크 제국의 감시초소였다. 이런 아픈 역사를 뒤로하고 지금은 한때 감옥으로 사용하던 곳에도 식당, 카페가 성업 중이다. 성은 역사박물관과 국립박물관, 국립도서관으로 쓰이고 있으며, 도나우 강과 부다페스트의 조화를 즐기려는 관광객들로 가득하다.
바로 옆 겔레르트 언덕엔 모스크바 쪽을 바라보고 있는 동상이 있다. 2차 대전 당시 헝가리를 점령했던 독일을 소련군이 물리치고 세운 이른바 '자유의 여신상'이다. 하지만 독일로부터 해방된 기쁨도 잠시. 자유를 얻게 될 줄 알았던 헝가리는 종전 이후 소련의 개입으로 원치 않는 사회주의 길을 걷게 된다. 아픈 역사의 상징이 된 곳이지만 동상 뒤편의 전망만큼은 최고다. 겔레르트 언덕에서 바라본 도나우 강과 부다 성 일대는 빼어난 아름다움을 인정받아 1987년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됐다.
◇13세기 지은 마차슈 성당 우뚝
왕궁에서 5분 정도 걸어가면 거대한 마차슈 성당이 눈에 들어온다. 13세기에 세워진 건축물로 독특한 지붕과 대리석의 조화가 멋스럽다. 이곳은 마차슈 왕을 비롯해 역대 국왕의 결혼식과 대관식 장소로 이용되던 곳이다. 온통 황금으로 장식된 주 제단이나 대관식에 사용된 베일과 성물 등 전시물이 상당히 화려하다. 또 성당 내부는 중세와 현대의 감각이 혼합된 헝가리만의 독특한 양식으로 유명하다. 터키에 점령당했을 때는 이슬람 사원으로도 쓰였는데 지금도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고깔 모양의 일곱 개 탑이 동화 속 성을 떠올리게 하는 곳, 어부의 요새 역시 여행객의 시선을 붙든다. 이곳이 명소가 된 데는 전망도 한몫했다. 강 건너편에 있는 국회의사당을 바라보기 아주 좋은 장소이기 때문이다. 요새 한쪽에선 거리의 악사가 연주하는 '글루미 선데이'가 애잔하게 울려 퍼진다. 부다페스트를 배경으로 한 영화 '글루미 선데이'는 동명의 타이틀 곡으로 사랑받았지만 부다페스트의 풍경을 아름답게 담아낸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 장소들이 이 어부의 요새를 중심으로 한 도나우 강변이다.
부다 관광을 마치고 세체니 다리를 건너면 신시가지 페스트가 나타난다. 페스트 쪽 강변에 성처럼 솟아있는 건물은 부다페스트의 자랑인 국회의사당. 건국 1천 년을 기념해 1904년에 완성한 것으로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입법 건물 중 하나다. 그 위엄과 화려함을 지키기 위해 십수 년째 보수공사를 계속하고 있다고 한다. 최고 볼거리는 헝가리 국장에도 포함된 성 이슈트반의 왕관이다. 이 왕관은 국회의사당 내부에 모셔져 있고 그 주위에 근위병들이 보초를 서고 있다. 건물 일부만 사용하고 있으며 개인으로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제한적이므로 가이드 투어를 신청해야 내부를 둘러볼 수 있다.
국회의사당에서 멀지 않은 곳에 성 이슈트반 대성당이 있다. 짓는 데 50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는 곳이다. 오랜 공사 기간 때문일까. '성당 건설이 끝났을 때'라는 말은 마치 '돼지는 날 수 있다'는 말처럼 실현 불가능한 일로 여겨졌다고 한다. 내부엔 성 이슈트반의 오른손 뼈를 보관하고 있는 '신성한 오른손 예배당'이 있다. 동전을 넣으면 장식함의 불이 켜지면서 손가락뼈가 잘 드러나 보인다. 이 성당의 탑은 96m로 부다페스트에서 가장 높으며 돔 꼭대기에 올라서면 360도 전망이 시원하게 전개된다.
◇영웅광장엔 헝가리 위인들 모셔
영웅광장 역시 건국 1천 년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곳으로 헝가리 역사를 빛낸 영웅들을 한자리에 모아놓았다. 중앙기둥의 대좌에는 9세기경 헝가리에 온 마자르족 수장들의 동상이 서 있다. 헝가리인의 조상인 마자르족은 유목 기마 민족으로, 다른 유럽 국가와는 다르게 의상과 무기가 독특하다. 그 뒤편으로는 반원 형태의 주랑에 헝가리 역대 왕과 혁명가의 동상이 나란히 서 있다.
페스트 지역을 걷다 보면 혁명의 흔적을 남겨놓은 곳을 종종 만날 수 있다. 냉전을 종식한 로널드 레이건의 동상, 헝가리의 혁명 영웅이자 정치가인 너지 임네의 동상이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다. 또 의사당 광장에 있는 한 건물은 혁명 당시 사용했던 포탄 모양의 조형물로 벽을 장식해 놓았다. 건물의 다른 벽면에도 혁명 당시 저항했던 사람들을 추모하는 부조 기념물이 있다.
전통시장 구경도 여행에서 빠질 수 없다. 중앙시장이 가장 대표적이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고추와 마늘. 헝가리의 주요 향신료가 고추와 마늘이어서 음식 맛이 우리와 흡사하다. 2층엔 요기할 수 있는 작은 식당이 줄지어 있다. 헝가리 전통 수프인 굴라시는 고기와 채소를 썰어 넣고 매콤하게 끓여낸 것으로 우리 입맛에도 잘 맞다. 헝가리산 와인도 많이 찾는다. 헝가리산 와인은 저렴하고 품질이 좋은 것으로 유명하며 특히 달콤한 화이트와인인 '토카이'가 인기상품이다. 변변치 못한 미각인지라 품평은 주제넘지만 맛있는 술이라는 데엔 이견이 없다.
전 '대구문화' 통신원 android2019@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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