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수년간 세계 경제를 침체에 빠뜨렸던 미국 중심의 금융시스템은 당초 기대와는 달리 여전히 불안한 운행을 지속하고 있다. 어떻게 실물경제에 기여하면서 사회적으로 유용한 가치창출을 지속할 수 있을지 불투명하고 과거의 금융으로 일부 복귀하려는 모습도 관찰된다.
신흥국가의 사정을 배려한 국제금융체제의 개편이나 보완 노력보다 일단 금융 안정과 실물 회복이라는 자국 목표에 충실한 선택이 우선시되고 있다.
비교적 최근에 제기된 양적 완화 축소에 대한 신흥시장의 우려가 선진국의 정책당국에 전달되었지만 전염 효과와 일방적 비용 전가를 인정받는 데만 2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문제는 향후 대외시장과 금융시스템 모두 외부에 의존하고 있는 신흥국의 경우 선진경제의 결정에 따라 여전히 파악하기 어려운 큰 위험을 안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근본 차원의 불안 요인은 우리나라의 장기투자를 가로막고 인재풀의 해외유출을 가속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분석에 기초해볼 때 우리에게 당장의 성장이나 고용유지라는 목표를 달성하려는 노력을 구사하는 데에도 상당히 신중한 자세가 요구됨을 알 수 있다.
몇몇 글로벌 대기업의 수출 호조로 거시지표를 유지할 수는 있지만 일반서민들의 생존기반은 점차 축소될 수밖에 없다. 더욱이 생존기반이 취약해지는 점을 간과하고 일부 기업에 집중하는 전략은 통합환경에서 요구되는 위험관리의 방향과 완전히 어긋난다. 물론 성장 탄력을 유지해야 이후의 개혁 노력도 진전될 수 있다.
그러나 눈앞의 함정을 피하려다 더욱 큰 함정에 깊숙이 빠지는 선택을 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진단은 노동시장의 여건상 기존 패러다임 하에서 투입대비 산출량이 점차 저하할 수밖에 없다는 점, 안정화로 더욱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점, 그리고 우리의 미래를 지탱할 중장기 투자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 한마디로 기존 체제를 그대로 두고 재원을 투입할 경우 재정위기 상황을 배제하기 힘들다.
정부가 다소 비현실적으로 들리는 창조경제로의 변화를 촉구하는 이유는 바로 지금의 성장 패러다임으로는 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진단에 기초하고 있다. 모두가 동등한 자격으로 참여하는 시장에서 독점적 위치의 존재는 시장 발전의 저해요인이다. 더욱이 대부분의 정책노력들이 매번 발등의 불을 끄는 작업에 동원되다 보니 어디까지가 민간의 책임인지 구분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래서 주요 기업들은 돈을 쌓아놓고 있으며 당장 가시화될 프로젝트에만 돈이 몰리고 있다. 더욱이 수시개입으로 유지되는 시장 환경은 소수에게만 규제차익기회(arbitrage opportunity)만 선사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우리가 스스로의 한계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에 위기를 수습한 선진경제의 재도약은 우리에게 기대하지 않은 부담을 전가하기 쉽다.
미국의 주요기업들이 성장을 견인하는 배경은 민간의 창의성이 존중되기 때문이다. 정부가 아닌 민간주도의 창의성과 이를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시장기능은 실패를 줄일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창조경제의 근본 속성에도 어긋나게 여전히 정부부처 중심의 주도가 전면으로 부각되고 있다. 개혁과 위험관리의 주체마저 역할에 혼선을 빚으면서 냉소와 무관심의 기류가 커지고 있다. 창의성이 시장가치화 되기까지 필요한 제반 인프라 구축 관련 법적'제도적 인프라는 아직 초기 혼란의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문제를 알면서도 누구도 나서서 대응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우리가 점차 심각해지는 성장통을 극복하고 명실상부한 선진경제로 도약하려면 미래 성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새로운 인프라 구축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정부는 글로벌 차원에서 잠재적 투자자들이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 개방적이고 공정한 시장 여건을 구비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사회구성원 모두가 향후 경제뿐 아니라 사회 및 문화 인프라에 이르기까지 선진경제의 토대를 다져야 한다. 이러한 자세가 아직도 경상수지 흑자 행진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고루함에서 벗어나는 진정한 발전이자 성장통 극복의 왕도이다. 언제까지 망가진 계기판만 바라보면서 추락하는 현실을 외면할 수 있을까?
최공필/금융연구원 상임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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