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촌 김성수(1891~1955)의 가장 믿음직한 친구는 함께 독립운동을 벌였던 고하 송진우(1890~1945)였다. 인촌은 장인이 세운 영어학숙에서 고하와 만나 평생을 함께하는 친구가 되기로 맹세했다. 3'1 독립운동 기획에도 참여한 그들은 만세 운동 후 일제에 검거되자 고하는 친구를 보호하기 위해 인촌의 죄까지 뒤집어썼다.
중앙학원을 인수해 교장을 지냈던 인촌은 고하에게 교장직을 물려주고 독립운동을 하기도 했다. 제대로 된 독립운동을 하려면 언론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인촌은 동아일보사를 만든다. 이때도 고하와 함께 했지만 일제의 만행이 극에 달하던 1930년대 말부터 친일 활동을 벌여 고하와는 다른 삶을 살았다.
하지만 인촌의 친일 행위에 대해서는 찬반양론이 분분하다. 그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일반적인 친일론자들과는 달리 창씨개명을 하지 않았고, 일제로부터 작위나 훈장을 받은 적이 없다는 점을 그 근거로 든다. 인촌의 중도이탈을 이해해준 고하와는 좋은 관계를 유지했고 해방 이후에도 둘 사이는 돈독했다. 이 역시 친일 반대 근거로 작용한다.
인촌은 1951년 오늘 대한민국 2대 부통령에 취임하면서 이승만 정권과 한배를 탔다가 장기집권 획책에 반대, 15개월 만에 사임하고 통합 야당 창립에 전력을 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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