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박근혜의 위징

입력 2014-05-13 11:08:11

요순 이래 중국에서 가장 뛰어난 성군으로 손꼽히는 당 태종 이세민은 손에 피를 묻히고 왕좌를 차지했다. '현무문의 변'을 통해 황태자이던 형(이건성)과 동생(이원길)을 죽이고 왕위에 올랐다. 처음부터 명군은 아니었지만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재위(627~649) 기간 동안 정치 경제 문화 등 다방면에 비약적인 발전을 이룬 당 태종의 치세는 '정관지치'(貞觀之治)로 불리는 중국 3대 태평성세 중 하나이다.

태종이 정관지치를 이룰 수 있었던 바탕은 도덕'재능'학식을 갖춘 인재를 널리 구해 쓴 덕분이다. 대표적인 인재가 위징이다. 위징은 원래 황태자 건성의 남자였다. 위징은 황태자가 순조롭게 황제가 되려면 야망이 큰 이세민을 죽이라고 조언했다. 그러나 황태자는 미루다가 오히려 동생 손에 불귀의 객이 됐다.

황태자를 죽인 이세민이 위징을 불러들였다. 왜 자신을 죽이라고 했느냐고 질책했다. 위징은 답했다. "황태자 건성이 제 계책대로 따랐다면 오늘 이런 재앙은 없었을 것이오." 이세민이 위징을 부를 때 다들 죽은 목숨으로 여겼지만, 오히려 이세민은 경의를 표했다. 죽음을 불사하고 옳다고 여긴 바를 실천한 위징을 높게 샀다. 그런 위징을 이세민이 황제자리에 오르자마자 발탁했다.

자신에게 막강한 권한을 주었지만, 위징은 아첨보다 비판을 택했다. 당태종이 조금이라도 백성에게 불리한 결정을 하려 하면 여축없이 제동을 걸었다. 때로는 역린이라고 느껴질 정도의 과격한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무려 300번 이상, 당 태종이 노여워할 만큼 과감한 비판을 했다. 위징 사후, 고구려 정벌(645년)에 나섰다가 참담한 실패를 맛본 당 태종은 "위징이 살아있었다면 이번 원정을 말렸을 걸"하는 후회를 '신당서' 위징열전 편에 남겼다.

당 태종이 신하들과 나눈 정견을 담은 문답집 '정관정요'(貞觀政要)는 제왕학의 교과서로 불린다. 취임 초 박근혜 대통령도 즐겨 읽는다고 소개됐다. 그 '정관정요'는 사람에서 시작하고 사람에서 끝난다. 사사로운 이익을 찾아다니는 소인배가 아니라 곤경에 빠진 나라를 구할 수 있는 인재를 찾는 것은 나라를 다스리는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이미 청와대 개편을 시작한 박근혜 대통령이 이번에야말로 현명한 인물을 두루 찾아내서 세월호 수습과 관피아 척결 그리고 국가개조에 성과를 내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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