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손가락과 달

입력 2014-04-21 07:34:19

불교의 설화 중에 부처님이 달을 가리키자 어리석은 사람들은 달은 보지 못하고 손가락만 보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 이야기는 언어와 참된 세계의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때 자주 인용하는 것이다. 달을 보게 하려면 손가락이 정확한 방향을 가리켜야 하듯, 참된 세계를 보게 하려면 언어가 정확해야 한다. 그러나 달을 보았으면 손가락은 잊어도 되는 것처럼 언어를 통해 참된 세계를 보았다면 언어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 부처님이나 예수님 같은 성인들의 생각은 그 깊이가 매우 깊어서 보통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말들도 있는데, 어떤 사람들은 일부러 어려운 말만 골라 앵무새처럼 따라하며 자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뽐낸다. 이런 것이야말로 손가락과 달을 구분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일상을 살다 보면 손가락과 달을 구분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 여러 사람과 크고 작은 일로 갈등을 겪다 보면 본질인 달은 볼 줄 모르고, 손가락을 가지고 다툼을 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자식을 키우면서, 남의 집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그런 때가 많다. 부모들은 늘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면서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때가 없는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화가 난다.

고등학교 교사들은 7교시만 마치면 각종 부위가 다 아파서 병원에 갔다 오겠다든가(갔다 오겠다고 하지만 학교로 돌아오지는 않는다.), 할아버지 제사 때문에 야간 자율학습을 빠진다든가(고3도 열외 없이 제사에 참석하는 뼈대 있는 집안이다.) 하는 아이들과 신경전을 벌이기도 있다. 그러다 보면 공부를 하는가 하지 않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아이가 책상에 앉아 있는가, 아닌가가 중요한 문제가 되어 버린다. 사실 목표의식이나 공부에 대한 동기가 없는 아이들은 아무리 책상에 오래 앉혀 놓아도 성적이 오르지 않는다. 이런 아이를 억지로 책상에 앉혀 놓으면 아이에게 목표는 공부가 아니라 책상을 탈출하는 것이 된다.

중학교 1, 2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뭐든 1등이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하시는 분이셨다. 2학년 때 우리 반 평균이 2등이 되자 선생님은 일명 '빡빡이'라고 불리는 숙제를 매일 세 장씩 해 오라고 하셨다. 나는 원체 글도 작게 쓰고, 다른 아이들처럼 볼펜 두세 개를 묶어서 사용하는 요령도 없어서 한 장을 채우기도 힘들었다. 매일 숙제를 못 해서 벌을 받다가 하루는 "더는 못 하겠습니다. 전 차라리 빡빡이 할 시간에 공부하고 싶습니다."라고 선언을 했다. 그랬다가 죽도록 맞은 이야기는 중학교 동기들 사이에서는 전설이 되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반 평균 1등', '빡빡이' 세 장과 같은 손가락에만 집착할 것이 아니라, '왜 공부를 해야 하는가, 공부는 이렇게 하면 좀 더 재미있게 할 수 있다'와 같은 올바른 방향을 가리키는 손가락으로 달을 볼 수 있도록 해 주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능인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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