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 장애인들은 어떻게 원하는 양의 물을 커피잔에 따를 수 있을까요. 그들은 또 어떻게 터치형 스마트폰을 사용할까요. 기술이 발전하고 편리해질수록 기술 때문에 소외되는 사람들도 생깁니다. 하지만 세상이 그렇게 각박한 것은 아닙니다. 타인의 불편함을 걱정하는 착한 디자이너들이 많이 있으니까요.
이번에는 보이지 않아서, 들리지 않아서 불편을 겪는 이들에게 초점을 맞춰봤습니다. 지금부터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무장한 착한 디자인을 하나씩 소개하고자 합니다. 이 같은 디자인을 '유니버설 디자인'이라고 부르지요. 안타깝게도 아이디어만 존재하고 상품이 출시되지 않은 '콘셉트 디자인'이 대부분이지만, 배려가 담긴 디자인을 보며 마음이 따뜻해지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물을 쏟지 않고 붓는 법-시각 장애인용 컵
시각 장애인들은 컵에 물을 부을 때 손가락을 넣어 양을 측정합니다. 만약 아주 뜨거운 물을 부어야 한다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빌려야 할지도 모르지요. 여기, 사용법은 달라도 목적은 같은 '착한 컵' 두 개가 있습니다.
먼저 소개할 디자인은 '벨 컵' (Bell cup)인데요. 이 컵은 디자이너 이상훈 씨와 임영범 씨의 콘셉트 디자인으로 머그컵에 감지 센서가 장착돼 있습니다. 컵 손잡이에는 세 가지 모양의 버튼이 있는데, 이 버튼을 누른 뒤 물을 부으면 정해진 양을 센서가 감지해 소리로 알려줍니다. 시각 장애인들에겐 가히 혁명과도 같은 디자인입니다.
두 번째 디자인은 디자이너 최순식 씨의 작품인 '실로폰 컵' (Xylophone cup)입니다. 이 컵은 부력을 활용한 디자인으로 별도의 배터리나 건전지가 필요없는 것이 장점입니다. 투명 유리컵에 부착된 움직이는 손잡이가 실로폰 역할을 합니다. 컵에 물을 부을 때 부력이 발생하는데, 적당량의 물이 차면 이 손잡이가 유리컵을 '땡' 하고 치죠. 하지만 이 소리를 들으려면 컵 손잡이를 잡아서는 안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기술로 듣는다-청각장애인용 보조 장치
2013년 미국 '스파크 디자인 어워드'(Spark Design Awards) 콘셉트 부문에서 금상을 받은 작품입니다. 청각장애인들은 길을 걸을 때 종종 어려움을 겪지요. 특히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를 걷다가 자동차가 경적을 울리며 옆에서 달려오더라도 위험을 감지할 수 없습니다. 이 디자인은 '청각 장애인을 위한 알람 안경'(Alarm Glasses for deaf)입니다. 울산과학기술대(UNIST) 학생인 디자이너 주상진 씨 등 2명의 공동 작품입니다.
안경테에 고성능 마이크를 내장해 소리를 감지하는 기술인데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첫 번째 기술은 소리를 눈에 보이는 애니메이션으로 만들고 소리 크기에 따라 색상을 달리해 렌즈에 파장을 표시합니다. 두 번째 기술은 귀와 연결된 안경테 부분에 진동 장치를 장착해 소리를 감지한 뒤 진동으로 전달하는 안경입니다. 자동차가 경적을 울리면 안경테가 연결된 귀에 진동이 느껴지는 식이죠.
비슷한 기술을 활용한 다른 디자인도 있습니다. 청각장애인들이 뒤에서 들리는 소리를 알아차릴 수 있게 해주는 청각 보조 시스템 '바이버링 센서'(Vibering Sensor)인데요. 디자이너 정광석 씨 등 3명이 만든 이 디자인은 반지 두 개와 시계 하나로 구성된 '세트 상품'입니다. 반지에 소리를 받아들이는 센서와 진동 장치가 장착돼 있습니다. 반지가 받아들인 소리 신호는 그림과 문자가 결합된 정보로 변환돼 시계 스크린으로 전달됩니다. 차 소리가 들리면 차 모양과 함께 '위험해요'(watch out)라는 정보를, 누군가 뒤에서 인사를 하면 '이름을 말하세요'(call your name)라고 알려줍니다.
◆폐쇄적인 아이폰의 따뜻한 배려
지금까지 소개된 따뜻한 디자인을 실제 상품으로 접하려면 꽤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에는 이미 출시됐지만 우리가 잘 몰랐던 기술을 소개하려 합니다. 요즘 사람들은 스마트폰으로 많은 정보를 습득하지요. 아이폰은 폐쇄적인 IOS로 유명하지만 그 속에는 인간적인 기술이 녹아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기능은 '보이스오버'(VoiceOver)와 '시리'(Siri), '모노 오디오'입니다. 소리를 기반으로 한 보이스오버와 시리는 시각 장애인에게, 모노 오디오는 청각 장애인에게 아주 유용한 기능입니다.
먼저 보이스오버부터 살펴볼까요. 쉽게 설명하면 스크린에 있는 모든 것을 소리로 읽어주는 기능입니다. 아이폰을 사용하는 기자가 눈을 감고 보이스오버 기능을 한 번 사용해봤습니다. 목표는 페이스북 상태에 글쓰기! 항목을 여러 차례 탭해서 페이스북에 들어가면 아이폰은 '○○○님이 새로운 사진 10장을 추가하셨습니다' '좋아요 1천425개' '이 소식에 관심을 표현하려면 두 번 누르세요' 하고 모든 것을 친절하게 읽어줍니다. 한동안 스크린을 터치하지 않으면 '화면 흐리게 표시됨' 하고 친절하게 알려주기도 하죠. 하지만 보지 않고 손바닥만 한 스크린 속 자판을 탭해 글을 쓰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결국 친구 사진에 '좋아요'를 누르는 것으로 만족하고 말았습니다.
시리 기능은 또 어떤가요. 인공지능 시스템인 시리는 말하는 대로 모든 기능을 실행하는 똑똑한 녀석인데요. 아이폰 4S부터 제공된 시리는 영어와 스페인어, 중국어를 비롯해 한국어까지 19개 언어를 서비스합니다. "누구한테 전화해. 문자 보내"라는 단순한 명령어부터 "이번 주 수요일 일정에 팀장과 점심 약속 저장해"처럼 다소 복잡한 명령어도 척척 알아서 해결합니다. 시각 장애인에게는 보이스오버만큼 유용한 기능입니다.
모노 오디오와 청각장애인용 자막을 한 번 볼까요. 모노 오디오는 소리를 좌우로 나누지 않고 한쪽으로 모아서 출력하는 서비스로, 한쪽 귀가 들리지 않는 청각 장애인에게 유용합니다. 또 설정에서 '청각장애인용 자막'을 선택하면 상황에 따라 비디오 재생 시 자막을 볼 수도 있습니다.
지금은 스마트폰 시대라고 하지요. 정보 검색과 쇼핑, 금융 서비스 등 모든 것이 스마트폰의 작은 창 속에서 이뤄집니다. 아직 완벽하지 않지만 다양한 이용자를 위한 아이폰의 인간적인 시도는 박수받을 만합니다. 디자인과 기술이 보편적일수록 세상이 아름다워지는 것 아닐까요.
※유니버설 디자인(universal design) 이란? 장애 정도나 연령, 성별, 국적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들이 제품과 건축, 환경을 보다 편하고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하는 것을 말한다. 미국 건축가 로널드 메이스가 처음 고안했으며 '모두를 위한 설계'(Design for All)라고도 한다.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민주당 "李 유죄 판단 대법관 10명 탄핵하자"…국힘 "이성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