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양의 Food 다이어리] 빵집의 진화, 어디까지?

입력 2014-04-17 14:12:01

1990년대 초, 나의 첫 유럽여행에서 만났던, 냄새마저도 오롯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크루아상은 입안에서 솜사탕처럼 스르르 녹아내렸다. 눈부신 아침 햇살이 내리쬐던 하얀 테이블보 위 바구니에 담긴 그 빵은 나에게 참으로 충격적인 식감과 맛을 선사해 주었다. 그 덕에 이탈리아의 티볼리 하면 크루아상밖에 생각이 나질 않는다.

그 빵이 지금껏 내가 먹었던 빵 맛 중에 최고는 아니겠지만, 그 당시 경험했던 빵의 맛과 식감의 평균치를 훨씬 넘어섰기 때문이리라.

미끄덩거리는 버터 맛이 기분 나쁘게 입 안에 남아돌아 생일 케이크가 그저 달갑지만은 않았던 나의 20대 때 도쿄의 어느 빵집에서 케이크 크림 맛의 신세계를 경험했다. 하도 오래전이라 신혼여행지에서 무엇을 하였는지 기억조차 희미한데, 그때의 추억이 달콤함으로 남아 있는 건 리얼 딸기가 올라간 생크림 케이크 덕분이다. 적당히 단맛과 입에서 녹아내리는 생크림 때문에 조각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아서 케이크 한 판에 지갑을 열었다.

30년 전에 한국 생활을 시작한 일본인 내 친구는 고향인 도쿄를 다녀올 때마다 식빵을 사 가지고 왔었다고 하였다. 이제는 일본 친구들이 서울로 여행을 오면 집 앞의 고급 베이커리에 데리고 간다고 하였다. 그녀는 더 이상 일본에서 빵을 가져오지 않는다.

최근 범어네거리에 럭셔리한 부티크형 빵집이 문을 열어 회자되고 있다. 파리를 콘셉트로 한 인테리어 디자인이 눈길을 끈다. 금빛으로 눈부신 화려한 샹들리에와 로코코 양식인가, 바로크 양식인가, 아무튼 그 어딘가쯤으로 보이는 소품들로 멋지게 꾸며놨다. 으리으리한 대궐 같아서 동네 작은 빵집들이 아주 기죽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단지 빵집으로 보기엔 무리수가 있을 것 같고, 빵을 팔고 있는 우아하고도 중후한 분위기의 카페이다.

내 기억 속의 멋진 빵집은 런던제과점이다. 엄마랑 함께 죠다쉬 청바지와 우산이 또렷하게 수놓인 아놀드파마 셔츠를 사고, 어김없이 런던제과에 들러 먹음직스럽게 보이는 빵을 보이는 대로 담아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 시절의 제과점은 백화점에 버금가는 것이었다. 동네에서는 구경할 수 없는 다양한 종류의 빵들이 먹음직스럽게 진열되어 있어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다. 뽀얀 유니폼을 입고 갓 구워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빵을 들고 나오는 제빵사 아저씨와 눈이라도 마주치면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백화점의 분내 나고 회장 진한 판매원 언니보다 훨씬 더 멋져 보였다.

십수 년 만에 참으로 다양한 콘셉트의 빵집들이 생겨났다. 수백 가지의 빵을 팔던 과거의 대형 제과점은 사라졌고, 최근 저가를 내세운 프랜차이즈형 빵집이 생겨났다. 틈새를 놓칠세라 단품으로 승부수를 던지는 파이 집이나 크로켓 집도 생겨났다.

커피전문점의 차별화 전략으로 빵과 결합한 형태의 브레드 카페, 또는 디저트 카페도 생겨났다. 빵집들은 커피도 팔고 음료수도 파는 카페형으로 변신을 시도했다.

제공자 측의 다양한 콘셉트 덕분에 소비자의 선택 폭도 넓어져서 참 다양한 스타일의 빵집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하나같이 유기농재료, 천연효모, 최고의 해외산 유기농 밀가루, 최상급의 초콜릿과 최상급의 버터, 치즈를 사용한다고 한다.

통단팥빵과 우유 한 잔, 간식이 아니었던가. 단팥빵 하나에 오백원 하던 것이 불과 얼마 전의 일이었던 것 같은데….

푸드 블로그 '모모짱의 맛있는 하루' 운영자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