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좌 등정 허락한 히말라야… 16개 학교 지어 보은하겠다
산악인 엄홍길(53)은 '히말라야의 살아있는 전설'이다. 1988년 에베레스트(8,850m)를 시작으로 초오유(8,201m), 시사팡마(8,027m), 마칼루(8,463m) 등 히말라야의 8,000m 이상 고봉 14좌를 완등한 데 이어 알룽캉(8,505m)과 로체샤르(8,400m) 등 8,000m가 넘는 위성봉 2좌까지 올라, 세계에서 처음으로 히말라야 16좌를 올랐다.
"영원히 산(山)으로 기억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엄 대장 엄홍길이 다시 히말라야에 가고 있다.
이번에는 정상이 아니라 히말라야 중턱에 위치한 오지마을 16곳이다. 그가 설립한 '엄홍길 휴먼재단'은 히말라야 오지 마을 어린이들을 위해 '엄홍길 휴먼스쿨'을 짓기 시작했다. 이미 에베레스트산으로 가는 길목인 쿰부히말라야 지역의 팡보체(4,060m)에 2010년 첫 번째 휴먼스쿨을 완공, 개교한 데 이어 올 초까지 5곳의 학교가 완공됐고 5곳의 학교는 짓고 있다. 히말라야 16좌를 완등한 그는 이곳에 16개의 학교를 짓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재단을 설립해서 학교를 짓고 여러 가지 봉사활동을 하게 된 것은 히말라야가 제게 깨우침을 줬기 때문이다. 저는 히말라야로부터 많은 도움과 은혜를 입었다. 16좌 완등에 성공했지만 동상에 걸려 발가락도 자르고 죽을 고비를 넘기고 동료도 잃고 우여곡절과 실패와 고통을 겪었지만 어쨌든 제가 이루고자 했던 일생의 꿈을 이룰 수 있었다. 히말라야의 신이 저를 살려서 내려 보내준 것이다. 16좌라는 골인지점에 도달하기 전까지 정신적, 육체적으로 많이 힘들었지만 간절하게 기도했다. ' 제발 성공하게 해달라. 제 꿈을 이룰 수 있다면 앞으로는 갚으면서 살겠다. 살아서 내려가게 해달라'고 산과 무언의 약속을 했다. 이제 그 약속을 지켜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히말라야 오지에서 사는 어린이들을 보고 그 아이들의 삶을 바꿔줄 수 있고 꿈을 갖도록 하는 것은 교육이라고 생각했다."
첫 휴먼스쿨인 팡보체는 2010년 5월 준공됐고 타프푸(2011년), 룸비니(2012년), 비레탄티(2013년)에 이어 산티푸르 휴먼스쿨이 지난 3월 8일 준공되는 등 5곳의 학교가 열렸고 내년 말까지 5곳이 더 완공될 계획이다.
국내에서는 영원한 '엄 대장'이지만 히말라야에서 엄홍길은 '엄 사부'로 불린다. 네팔에 큰 가르침을 주는 스승이라는 의미다. 휴먼스쿨 프로젝트 외에도 엄홍길 휴먼재단은 산악인 유가족 지원사업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청소년 희망원정대' 사업도 꾸준하게 펼치고 있다.
엄홍길 휴먼재단은 휴먼원정대에 이어 2007년 16좌를 완등한 후 파라다이스재단이 특별공로상을 수여하면서 꽤 많은 상금까지 주자 엄 대장이 "이 상과 상금은 엄홍길이라는 개인에게 주는 것이 아니다"며 재단 설립에 나서 2008년에 정식으로 발족했다.
히말라야 14좌 등정에 성공한 산악인이 30여 명에 이르지만 엄 대장처럼 직접 학교를 지어주면서 히말라야에 대한 지속적인 사랑을 표시하는 경우는 없었다. 1953년 에베레스트에 처음으로 오른 에드먼트 힐러리 경이 그쪽 쿤부지역에 학교와 병원을 지어준 경우를 제외하고는.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산은 엄 대장에게도 적잖은 시련을 던져 준 산이다. 히말라야에서 첫 도전한 산이 에베레스트산이었지만 쉽사리 엄 대장의 도전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1985년 남서벽 루트를 통해 첫 도전에 나섰지만 실패했고 다음 해인 1986년 다시 도전했지만 또 실패했다. 이때 처음으로 동료 대원을 잃었다. 그가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한 것은 1988년 세 번째 도전에서였다. 에베레스트는 그 후 2002년 한일 월드컵 성공을 기원하며 다시 올랐고 또 2003년 첫 등정 50주년 기념으로 다시 올라 도합 세 번이나 올랐다.
-히말라야에 간다고 해서 항상 성공한 것은 아니었다.
"8,000m 이상 고산에 도전한 것만 36번이다. 그중에서 16좌 등정에 성공했고 실제로는 에베레스트만 3번 오르는 등 20번을 성공했고 16번은 실패했다. 한일월드컵 때는 셰르파 2명과 함께 4명이 정상에 올랐다. 그 후 치러진 월드컵에서 우리나라가 4강에 올랐다. 나중에 곰곰 생각하면서 그때 4명이 아니라 혼자만 올라갔으면 우리나라가 우승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웃음)
히말라야에서 10명의 동료를 잃었다. 휴먼원정대를 꾸려서 후배의 시신을 수습하기도 했다. 계명대학교 개교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원정대였는데 고 박무택 대원이 사고를 당했다. 박 대원하고는 8,000m를 네 번이나 함께 갔다. 저로 인해서 자신감을 갖고 다시 도전한 것인데 그때도 정상 등정에 성공했지만 하산 과정에서 설맹에 걸려 오도 가도 못하고 매달려서 숨졌다. 사고 소식을 듣고 그다음 해인 2006년 휴먼원정대를 꾸린 것이다. 그냥 등정하는 것과 달리 정상 부근에 있는 시신을 수습해서 운구하는 일이어서 굉장히 어려움이 많았다."
휴먼원정대 이야기는 조만간 '히말라야'라는 영화로 제작되는데 주연배우로 황정민 씨가 확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위험을 무릅쓰고 고산 등반에 나서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는가.
"국내에 있는 산을 두루두루 다녔고 그러다 보니까 성에 차지 않았다. 히말라야라는 또 다른 세계가 보였다. 어느 상황까지 극복할 수 있을까. 이겨낼 수 있을까 저 자신의 기술이나 체력과 정신력 등을 시험해보고 싶었다. 처음에는 산이 좋고 히말라야가 좋아서 도전했다. 14좌라는 것은 처음에는 꿈도 꾸지 않고 상상도 하지 않았다. 특출한 외계인 같은 사람이 하는 것이라고 그 당시 생각했다. 당시 14좌에 성공한 사람이 전 세계에 세 명이었다. 또 가장 중요한 것은 예산 문제였다. 그때만 해도 후원을 받는 것이 굉장히 어려웠다.
어느 순간 14좌를 해야겠다고 목표를 설정하고 나서부터 산을 대하는 자세와 태도가 달라졌다. 14좌 목표는 1995년에 세웠는데 스페인팀과의 합동등반으로 마칼루 등반에 성공하면서 자신감을 얻었다. 성공도 하고 실패도 하면서 별의별 상황도 다 겪었다. 죽음의 상황도 수시로 넘나들고 동료도 잃었다. 그러다가 산이란 존재가 다르게 다가왔다. 도전의 대상이고 목표와 꿈을 이루는 대상이긴 하지만 개인적인 의지만으로는 절대로 오를 수 없다는 것을 어느 순간 깨닫게 됐다. 산이 저를 받아주고 선택해줘야만 산에 들어가서 오를 수 있고 정상에 갈 수 있다는 것을 엄청난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난 후에야 알았다. 히말라야 신(神)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때부터 자연의 순리에 따라 산을 오르고 있다. 절대로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되고 항상 겸손해야 하며 마음을 비워야 한다는 것을 늘 명심하고 있다. 그렇게 해야 정상에 오를 수 있고 사고 없이 내려올 수 있다는 것을. 이제는 제가 산이어야 하고 산이 제가 되어야 한다. 산이 있어서 제가 존재하고 제가 있어 산이 존재한다는 생각도 한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정복이나 원정이라는 표현을 쓴다.
"정복이라는 표현 자체는 말이 되지 않는다. 어떻게 인간이 산이나 자연을 정복할 수 있겠는가. 그랬다면 자연재해를 첨단과학장비로 미리 알고서 차단하고 대피하고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우리는 지진과 해일, 폭설과 폭우, 폭염 이런 것들이 일어나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지 않은가. 산에 오르는 것은 산을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자연에 순응하고 산이 우리를 받아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왜 14좌가 아닌 16좌인가.
"16좌는 제가 최초로 올라갔다. 원래 목표는 14좌였는데 다 이루고 나니까 삶에 있어서 살아갈 날이 더 많은데 목표가 없고 꿈이 없다고 생각하니까 허탈했다. 그래서 더 큰 성공에 도전하기 위한 새로운 시작이라고 생각했다. 우리 삶은 끊임없는 도전의 연속이다. 일상생활 순간순간이 도전이다.
히말라야에는 두 개의 위성봉이 있는데 이 두 개의 봉우리도 주봉으로 인정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 14개가 주봉이라면 2개의 봉우리도 주봉으로서 16좌라고 해야 한다. 서양 사람들이 자기네 기준으로 14좌를 정한 것이다. 누구도 도전해 본 적이 없는 16좌를 한번 해보자고 시도한 것이다."
-히말라야에서 가장 힘든 산은.
"16개 봉우리가 다 그렇지만 그중에 하나를 꼽으라고 하면 안나푸르나다. 안나푸르나는 8,091m인데 풍의 여신이라는 산이다. 이 산 등정에 네 번이나 실패하고 다섯 번째에 겨우 성공했다. 가장 많이 실패했고 동료도 가장 많이 잃고 저도 가장 큰 사고를 당한 산이다. 세 번째 갔을 때는 동료 셰르파가 눈앞에서 크레바스에 빠져 실종됐다. 네 번째 갔을 때는 내가 사고를 당했다. 7,600m 지점에서 동료 셰르파가 미끄러지기에 낚아챘는데 같이 20여m나 굴러 떨어졌다. 정신을 차려보니 그 친구는 멀쩡하고 저는 오른쪽 발이 완전히 부러져 있었다. 거기서 4,500m까지 한 발로 2박 3일 동안 내려왔다. 극적으로 살아났다.
다섯 번째 도전 만에 성공했지만 동료 두 명을 거기서 또 잃었다."
-다시 히말라야에 가고 싶지 않은가.
"(16좌를) 다 끝내고 나서는 진짜 그만 가야겠다고 다짐했다. 다시 8,000m 산에 오른다는 것은 제 욕심이고 히말라야 신이 더 이상 용납하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체력과 정신력은 젊은 사람 못지않다. 순간적인 순발력 등에서는 뒤질지 몰라도 지구력에서는 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
그때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가야 했다. 지금은 도시에 살면서 야생이 그립다. 히말라야가 그립고 다시 도전하고 싶은 열정도 있지만 이제 산에서 내려와 제2의 16좌 등정에 도전하고 있다. 바로 엄홍길 휴먼스쿨 16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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