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한 사람의 뛰어난 아이디어나 창의력, 신기술이 전 세계를 움직이고, 그것이 국가발전에 기여하는 새로운 시대입니다. 산업혁명 이후 물질적 격차(Material Divide)와 최근의 디지털 격차(Digital Divide)에 이어 앞으로는 창의성 격차(Creative Divide)가 국가와 개인의 부와 행복을 결정짓는 시대에 접어들었습니다.(박근혜 대통령의 다보스포럼 개막 연설 중에서)
연설문 형식의 글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창의성 격차에 대해 검색하다가 대통령이 다보스포럼에서 한 개막연설 전문을 읽게 되었다. 보기 드문 좋은 내용을 담고 있었다. 특히 미래는 창의성으로 결정되며 창의성 격차가 부와 행복을 결정한다는 말에 공감했다. 산업혁명 이후의 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격차를 만든다. 격차는 경쟁으로 인한 필연적인 결과라고 할 수 있지만 개인, 또는 집단 사이에 존재하는 갈등의 원인을 제공하기도 한다. 당연히 그 격차를 해소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몫이다.
물질적 격차는 경제의 재분배, 디지털 격차는 인터넷 환경 개선을 통해 해소할 수 있지만 창의성 격차는 어떻게 해소해야 할까? 대통령의 연설은 창의성 신장을 통해 경쟁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주장에 그쳤다는 아쉬움이 크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창의성 신장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토대인 교육 환경의 개선과 개별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창의성 격차 해소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창의성이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과연 우리 교육이 창의성을 발현하는 교육을 하고 있느냐는 질문에는 그렇지 않다고 답변할 수밖에 없다. 사실 창의성 교육은 최근 교육정책의 핵심이다. 교과교실제나 자율학교 운영도 창의성 교육의 방안으로 출발했고, 자유학기제도 크게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문제는 바로 그 지점이다. 창의성은 하드웨어보다는 소프트웨어적인 측면이 크다. 창의성은 교실수업으로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삶 자체에서 시작된다. 교실에서 아무리 창의성을 강조한다고 해도 방과후에 학원에 가서 수학 공식 하나 익히면서 소위 성적 향상에만 매달린다면 의미가 없다. 창의성의 가장 큰 공간은 여백이다. 아이들에게 여백이 존재하지 않으면 창의성 발현은 불가능하다.
창의성은 현상에 대한 의문에서 출발한다. 의문은 대체로 질문을 통해 발현된다. 다시 말하면 창의성의 핵심은 여백과 질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초등학교부터 시작되는 학교교육은 질문이 서서히 없어지는 과정이라는 것을.
언젠가 G20회의가 우리나라에서 있었다. 나라 전체가 거기에 집중했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도 참석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기자 회견. 자국 기자들의 질문이 끝나고 오바마는 한국 기자들에게 질문을 요구했다. 일종의 개최국에 대한 배려였던 셈이다. 하지만 한국 기자들은 아무도 질문하지 않았다. 옆에 있던 중국 기자가 계속 질문의 기회를 요구했지만 정작 질문이 허락된 한국 기자들은 침묵했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라 기자들은 질문할 내용을 미리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질문을 많이 하는 기자들이 이런 정도면 문제가 있지 않은가?
대통령의 다보스 포럼 연설은 분명 시대정신을 담고 있다. 내부적인 창의성 격차도 중요하지만 글로벌 시대의 국가적인 창의성 격차는 더욱 심각하다. 창의성 격차가 미래를 결정한다고 믿는다면 우선 교육에서 창의성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 방법은 아주 기본적인 부분에서 시작하는 것이 옳다. 바로 질문을 활성화하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정답을 외우게 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질문을 만들게 하는 것, 나아가 문제를 풀도록 하지 말고 문제를 만들게 하는 것, 창의성은 거기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한준희 대구시교육청 장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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