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사랑] 심장수술 후 뇌손상 입은 유예진 양

입력 2014-03-26 07:35:05

"생후 7개월 숨 쉬는 일조차 쉽지 않아요"

예진이가 주사기 용기에 담긴 분유를 코에 연결된 튜브를 통해 먹고 있다. 뒤쪽 칠판에는 예진이가 하루에 먹어야 할 약이 시간대별로 빼곡히 적혀 있다. 성일권 기자 sungig@msnet.co.kr
예진이가 주사기 용기에 담긴 분유를 코에 연결된 튜브를 통해 먹고 있다. 뒤쪽 칠판에는 예진이가 하루에 먹어야 할 약이 시간대별로 빼곡히 적혀 있다. 성일권 기자 sungig@msnet.co.kr

태어난 지 7개월 된 예진이는 숨 쉬는 일조차 쉽지 않다. 스스로 음식물을 넘길 수 없어 코로 집어넣은 튜브를 통해 분유를 먹고, 침도 삼킬 수 없어 목에 뚫린 구멍으로 수시로 가래를 빼내줘야 한다. 보통 생후 7개월 된 아기들은 혼자 뒤집기를 하고 기어다니기 시작하지만, 엄마 김해숙(42) 씨의 바람은 그저 예진이가 한 번 웃어주는 것이다. "아침 햇살 때문에 찡그리며 잠에서 깬 우리 딸이 엄마 얼굴을 보고선 방긋 웃던 얼굴이 눈에 선해요."

◆예진이 가족에게 찾아온 불행

예진이의 집은 살림이 넉넉지는 않았지만 화목했다. 늦둥이 예진이까지 태어나면서 집에는 웃음이 끊일 날이 없었다. 커다란 눈망울로 생긋생긋 웃는 예진이는 집 안의 귀염둥이였다. 아빠와 고등학교 3학년인 큰 언니는 바깥에서 들어오면 예진이부터 찾았고, 갓 초등학교에 들어간 작은 언니는 예진이만 예뻐한다며 토라지기도 했다.

생후 3개월쯤 됐을 때 예진이는 가벼운 감기 기운 때문에 소아과를 찾았다. 몇 차례 병원을 찾았지만 증상은 나아지지 않았고, 며칠 뒤 힘이 빠진 채 축 늘어진 아이를 보고 놀란 엄마는 종합병원 응급실로 달려갔다. 아이는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고 병원에서 심장 근육에 염증세포가 생긴 '급성 심근염' 판정을 받았다. 의료진들은 부모에게 심장이 10%도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며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말을 건넸다.

예진이의 엄마는 세상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예진이를 포기할 수 없었던 엄마, 아빠는 심장 수술을 선택했다. 문제는 수술 후 혈전을 막기 위해 항응고제를 먹으면서 심각해졌다. 항응고제는 출혈을 유발하기도 하는데 예진이의 경우 코와 입으로 피가 쏟아져 나오는 것은 물론 부작용으로 폐와 신장은 물론 뇌까지 손상이 왔다. 예진이의 몸은 미동조차 없이 굳어버렸고, 뇌도 기능을 거의 멈춰버렸다.

"의사들이 가망이 없다는 말을 하는데 나쁜 꿈을 꾸고 있는 느낌이었어요. 잘 웃고 건강한 우리 예진이에게 그런 일이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으니까요."

◆뇌손상으로 혼자 숨쉬기도 어려운 예진이

중환자실로 옮겨진 예진이 옆에서 엄마는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의료진들은 가족들에게 회복되기 어려울 거라는 절망적인 말만 했다. 하지만 엄마는 기다렸고 그 기다림에 대답하듯 예진이는 한쪽 눈을 조심스레 떴다. 망가졌다던 폐와 신장도 웬만큼 정상상태로 돌아왔다. 하지만 예진이의 뇌는 저산소성 허혈성 뇌병증으로 손상돼 예전처럼 회복되지 못했다. 2달간 몇 차례 고비를 넘기며 예진이는 양쪽을 눈을 다 떴고, 목과 팔다리를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설날을 일주일 앞두고 예진이는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돌아온 예진이의 모습은 전과는 너무도 달라졌다. 목에는 구멍이 뚫렸고 코에는 튜브를 꽂아 위장까지 연결했다. 눈을 뜨기는 하지만 초점이 없이 허공을 바라보고 움직임도 많지 않다. 예전처럼 웃는 얼굴은 찾아볼 수가 없다.

짧게는 10여 분마다 한 번씩 갑자기 숨소리가 거칠어지기도 한다. 목에 가래가 차서 숨쉬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가래를 뽑아내는 기계를 집에다 가져다 놓고 목에 있는 구멍과 입속의 가래를 빼줘야 한다. 작은 몸으로 약도 엄청나게 먹어야 한다. 가래약, 경련약, 항생제 등 하루에 5~6번의 약을 먹는다.

◆예진이를 위해 희생하는 가족들

가족들의 삶도 180도 달라졌다.

지역아동센터에서 선생님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던 엄마와 교회에서 부목사로 일하던 아빠는 일을 그만둬야 했다. 수시로 가래를 빼줘야 하기 때문에 24시간 엄마나 아빠가 예진이 곁에 있어야 한다. 재활치료를 위해 병원을 찾을 때도 10㎏이 훨씬 넘는 흡입기계를 들고 가야 해 엄마, 아빠 두 사람 모두가 일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수입은 사라졌지만 돈이 들어갈 곳은 더 많아졌다. 가래 흡입기계와 카테터(장기 내로 삽입하기 위한 튜브형의 기구), 식염수, 목과 코에 들어가는 튜브 등 예진이를 돌보는 데 쓰이는 의료용품들은 가격이 만만치 않다. 가래를 뺄 때 예진이의 목 안쪽에 닿는 카테터의 경우 원래는 한 번 쓰고 버려야 하지만 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 식염수로 소독한 뒤 반나절 정도를 사용한다.

피아노를 전공하던 고등학교 3학년 큰 언니는 피아니스트의 꿈을 포기했다. 피아노도 팔아야 했다. 한창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초등학교 1학년 작은 언니는 학교를 마치면 곧장 지역아동센터로 가서 저녁식사까지 하고 집으로 돌아와야 한다.

가족들의 희생으로 예진이의 상태는 조금씩 좋아지고 있지만, 경제적'체력적으로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를 생각하면 엄마는 막막하다. 엄마는 예진이가 아파지기 시작한 넉 달 전부터 하루도 깊이 잠들어본 적이 없다. '혹시나 자신이 잠든 사이 가래 때문에 숨을 쉬지 못하면 어떡하나'하는 불안감에 아빠가 예진이를 돌볼 때도 작은 소리에 계속해서 깬다.

"앞날을 생각하면 너무 막막해서 오늘 하루를 버텨내자는 생각으로 살고 있어요. 조금씩 상태가 좋아지는 걸 보면서 목에 있는 튜브를 뺄 수 있었으면, 코에 있는 튜브를 뺄 정도로 건강해졌으면 계속 욕심은 생기지만 지금 당장은 그저 저를 보고 예전처럼 웃어주기만 해도 바랄 게 없어요.."

※이웃사랑 계좌는 '069-05-024143-008(대구은행), 700039-02-532604(우체국) ㈜매일신문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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