女, 내가 웹툰을 보는 이유…"어머, 나랑 똑같네" 친구같은 '격한' 공감

입력 2014-03-15 07:37:29

내가 좋아하지 않는 취미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만화책 읽기, 하나는 스마트폰 게임이다. 만화는 글을 읽으며 할 수 있는 상상을 방해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스마트폰이 없었던 대학생 시절, 컴퓨터 모니터 앞에서 조석 작가의 '마음의 소리'를 보며 낄낄대는 남자 선배들의 모습이 다소 찌질해 보였다고 이제서야 고백한다. 스마트폰 게임도 마찬가지다. 한때 대한민국을 강타한 '애니팡'조차 깔지 않았을 정도로 게임에는 영 흥미가 없었다.

이런 내가 웹툰에 빠질 줄 몰랐다. 스마트폰 웹툰의 세계로 발을 들인 첫 작품은 난다 작가의 '어쿠스틱 라이프'(이하 어쿠스틱)였다. 소소한 일상을 소재로 해 '일상툰' 또는 '생활 만화'라는 장르에 분류되는 만화다. 작가의 출산으로 지금은 육아가 주요 소재가 됐으나 내가 처음 이 웹툰을 접했을 3년 전만 해도 '남편 관찰일기'에 가까웠다. 게임광인 남편 한군과 프리랜서 만화가인 작가 사이에서 발생하는 작은 다툼마저 소재가 되는 일상적인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이런 내가 웹툰에 귀찮게 로그인하고 댓글까지 달 줄 몰랐다. 출산으로 한동안 쉬었던 작가가 복귀했고, 웹툰이 올라오는 금요일 만 목 빠지게 기다리는 열성팬이 돼버린 것이다. 논란의 시작은 이랬다. 일과 육아를 병행했던 작가가 개인적인 사정으로 잇따라 휴재하는 일이 발생했고, 독자들의 의견은 댓글로 반반 갈렸다. "마감은 독자와 약속인데 프로답지 못하다"는 의견과 "일하는 엄마니까 우리가 이해하자"는 주장이 대립했다. 그때 나는 웹툰이 빨리 읽고 싶어 작가의 잦은 휴재를 비판하는 댓글을 단 속 좁은 독자였다. 일하기도 바빠 죽겠는데, 이런 비생산적인 토론에 빠져든 나는 이미 열혈팬이었다.

어쿠스틱의 힘은 공감에 있었다. 시댁에 가서 제사를 지내면 '제사왕'으로 등극해 가정에서 권력을 누리고, 아무리 잘못해도 아프면 '병자왕'이 돼 모든 잘못을 용서받는 소재는 결혼하지 않더라도 격하게 공감하며 읽을 수 있었다. 또 다른 매력은 '엿보기'에 있다. 친구의 일기를 훔쳐 읽는 느낌이라고 할까. 이번 주는 이 사람에게 무슨 일이 있었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 웹툰 하나로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나의 존재조차 모르지만 나는 작가가 결혼부터 출산까지 삶의 굴곡을 함께한 친구 같은 느낌이 든다.

난다 작가는 어쿠스틱 시즌 9로 얼마 전 복귀했다. 2010년부터 지금까지 그가 작품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나 같은 독자들이 댓글로 표현한 관심 덕분이 아니었을까. '내 남편도 똑같아요' '서른 넘으니 저도 팔자 주름 생겨요'등 소소한 댓글은 작가에게는 관심의 표현이, 독자에게는 공감하는 재미가 된다. 문학 작품이 주는 진한 감동을 웹툰에서 기대하지 않는다. 다만 나는 비슷비슷하게 살아가는 장삼이사들의 일상을 통해 남편과 티격태격하는 미래의 결혼 생활, 직장 일과 육아를 병행할 워킹맘의 삶을 그려본다. 웹툰이 주는 공감이란, 이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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