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칼럼] 3·1절과 한국 교회

입력 2014-03-08 07:51:17

제95주년 3'1절이 봄의 계절, 3월의 시작을 알렸다. 3'1절은 교회에서 지키는 종교적인 절기는 아니지만 한국 교회는 3'1절을 특별하게 생각하여 기념해 왔다. 그것은 일제 강점기, 한국 교회가 민족정신을 고양하며 독립을 위해 저항하는 일에 깊이 관여한 역사 때문이다.

3'1독립운동 선언문에 서명한 민족대표 33명 중 16명이 기독교인이었다. 서울을 비롯해 평양, 선천, 원산, 의주 등 12곳에서 일어난 3'1독립운동은 교회 혹은 기독교인들이 중심이 됐다. 당시 우리나라 전체 인구가 1천600만 명이었고, 기독교인들은 1.3%인 20여만 명에 불과했음을 감안해 보면 한국 교회가 3'1독립운동에 얼마나 주도적으로 참여했고 큰 기여를 했는지를 잘 알 수 있다.

일제 강점기, 한국 교회는 일본제국주의자들에게 눈엣가시와 같은 존재였다. 그래서 한국 교회는 끊임없는 감시와 핍박을 당했다. 일제는 제암리교회에서 교인들의 손을 묶어 예배당 안에 가두고 문을 잠근 뒤 불을 질렀고 빠져나오는 사람들에게 무차별 총격을 가하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3'1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주도한 교회에 대한 보복이었던 것이다.

당시 한국 교회는 암울한 역사적 상황에 놓여 있는 민족에게 큰 위로와 소망이 되었고, 교회를 다니지 않던 사람들조차도 교회와 교인들을 존경했다. 심지어 일본 헌병대에서조차 교인들의 윤리 수준을 높게 평가하기도 했다. 1919년 4월 평안남도 지역 일본 헌병대 일지에 기록되어 있는 문서에 의하면 3'1독립운동이 일어난 지 한 달이 되었을 때 무라카미 헌병소장은 다나카 부장에게 3'1독립운동에 참여한 사람들과 주동자들을 체포해 오라고 명령했다. 이에 다나카 부장이 밖에 나가 조사를 해 보아도 누가 만세를 불렀는지 알 수 없다고 하자 무라카미 소장은 그러면 기독교인들을 잡아 오라고 했다. 그 이유는 기독교인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기 때문에 만세를 불렀는지, 부르지 않았는지 물어보면 알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일제 강점기, 한국 교회는 민족의 독립을 위해 큰 기여를 했고, 모든 사람들로부터 인정받는 교회, 존경받는 교회였다. 하지만 요즈음 한국 교회 모습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아 안타깝다. 최근 기독교 윤리실천운동본부에서 종교의 신뢰도 조사를 해서 발표한 자료를 보면 교회에 대한 신뢰도가 그리 높지 않다. 높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상당히 낮은 수준이다.

이는 교회 스스로가 자초한 측면이 많다. 목회자와 교인들이 비윤리적인 사건에 연루되고 일부 대형 교회에서 일어난 비상식적인 일들이 연이어 노출되면서 신뢰도를 스스로 떨어뜨렸다. 그래서 3'1절을 맞은 한국 교회는 부끄럽고 아프다. 제95주년 3'1절을 보내면서 한국 교회가 다시 새롭게 태어나 3'1독립운동 당시처럼 모든 사람들로부터 존경받고 나라와 민족의 역사에 귀히 쓰임을 받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

이승현 대구평강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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