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일본의 법학도가 가장 많이 읽었던 헌법 이론서는 현재 교토대 명예교수인 사토 고지(佐藤幸治)가 쓴 '헌법'이었다. 그러나 고(故) 아시베 노부요시(芦部信喜) 전 도쿄대 명예교수가 쓴 같은 제목의 저서가 1993년에 나오면서 사토의 책은 뒤로 물러나야 했다. 초판이 나온 이래 2011년까지 모두 5판을 찍은 아시베의 책은 일본에서 '헌법학의 교과서'로 통한다.
이 책은 스승인 미야자와 도시요시(宮澤俊義)의 '8월 혁명설'을 계승한 바탕 위에서 '평화헌법'의 정신과 특질을 설명한다. '8월 혁명설'이란 '평화헌법'은 제정 과정에 일본의 항복, 일본의 민주화와 일본 국민에 대한 기본적 인권의 보장 등을 천명한 포츠담 선언의 수락 등 '다양한 정치적 요인'이 개입한 것은 부정할 수 없으나 결국은 일본 국민 스스로 헌법 제정 권력을 발동해 제정한 것이며, 이를 통해 '천황주권'을 '국민주권'으로 전환했다는 점에서 '혁명'이란 주장이다. '평화헌법'은 맥아더 사령부가 강요한 것이란 일본 우익과는 180도 다른 해석이다.
아시베는 이런 전제하에 헌법의 본질은 '시민의 자유'와 '국가권력의 제한'에 있다고 한다. 시민혁명을 거쳐 발전해온 근대 헌법은 무엇보다 '자유의 기초법'이자 '개인의 존중 원리'와 이에 기초한 체계를 근본 규범으로 하는 가치 질서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같은 점에서 헌법은 국법 질서에 있어 가장 강한 형식적 효력을 지니는 '최고 법규'로서 국가권력을 제한하는 '제한 규범'이기도 하다는 것이 그의 지론(持論)이다.
이 같은 헌법의 지위 특히 '국가권력을 제한하는 최고 법규로서의 헌법'은 세계의 모든 민주국가가 받들고 있는 진리이다. 그러나 아베 총리만 이를 모른다. 그는 지난 13일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헌법이 국가권력을 속박한다는 것은 왕권이 절대 권력을 가졌던 시대의 생각"이라고 했다. 근대 헌법이 절대 왕권에 대한 시민의 투쟁의 산물이란 기초적 사실조차 모르는 '무식한'(無識漢)이다.
그런 아베에게 일본의 '내일의 자유를 지키는 젊은 변호사 모임'이 밸런타인데이인 지난 14일 '헌법 공부 좀 하라'는 뜻에서 "기본 지식이 부족한 사람에게는 국정을 맡기기 어렵다"는 내용의 편지와 함께 아시베의 '헌법'을 선물했다고 한다. 아베가 이 선물을 쓰레기통에 던지지 않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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