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의 삶과 정 느끼고, 기억에 남는 여행지 되었으면"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에서 안정적인 직장, 번듯한 남편, 맨해튼의 아파트까지 모든 것이 완벽해 보이지만 언젠가부터 이게 정말 자신이 원했던 삶인지 의문이 생긴 31세의 저널리스트 리즈(줄리아 로버츠)가 일, 가족, 사랑 모든 것을 뒤로한 채 무작정 일 년간의 긴 여행을 떠난다. 리즈는 영화 제목 순서대로 이탈리아에서 신나게 먹고 인도에서 뜨겁게 기도하고 발리에서 자유롭게 사랑하는 동안 진정한 행복을 느끼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다님 백패커스 이호원(32) 대표는 영화의 주인공 '리즈'처럼 여행을 통해 삶의 결정적인 변화의 순간을 겪었다. 여행을 떠나는 이유를 "다른 곳에 사는 다른 사람의 삶을 겪어보고 싶어서"라고 말하는 이 대표는 다님 백패커스를 통해 대구가 타지역의 많은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는 곳이기를 바랐다.
◆현지의 삶 속으로 들어가는 여행
이 대표 본인은 '별로 다니지 않았다'고 했지만 이 대표의 여행지는 다양하다. 호주 워킹홀리데이부터 시작한 여행은 태국,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필리핀, 중국, 일본 등으로 점점 확대됐다. 태국에 있을 때는 현지 여행사에서 잠깐 일을 한 적도 있다. 2006년 호주 워킹홀리데이 초기 시절 호주에 도착했지만 방을 구하지 못해 '백패커스'라고 적힌 싼 숙소를 발견, 며칠 머물렀던 것이 이 대표와 게스트하우스와의 첫 인연이었다. 그때만 해도 게스트하우스는 서양의 여행문화였다. 이 대표는 워킹홀리데이 기간 동안 호주를 여행하면서 많은 게스트하우스를 접하게 됐고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지금의 다님 백패커스를 만들었다.
이 대표는 자신이 여행을 다니는 이유를 "나와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행복을 찾아 움직이는지 궁금해서"라고 했다. 태국 방콕 뒷골목에서 만난 아이들의 남루하지만 밝게 웃는 모습을 보며 '무엇이 저 아이들을 행복하게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대한 해답을 얻으려면 그 사람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같이 살아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 보니 관광지만 돌아다니면 전혀 할 수 없는 다양한 경험을 했다.
"동남아시아 지역 중 한 곳이었는데, 여행을 하다가 우연히 현지 친구를 사귀게 됐어요. 이야기가 잘 통해서 친해졌는데 급기야는 그 친구의 할머니 댁까지 가게 됐어요. 그곳에서 조상에 제사를 지내는 모습도 보게 됐죠. 아마 그냥 관광만 다녔다면 전혀 볼 수 없었을 장면이었죠. 또 태국 방콕 클럽에서 화려한 옷차림을 하고 클럽에 놀러 온 여성을 만났어요. 클럽에서 같이 놀다가 어찌하다 보니 그 아가씨의 집에 가게 됐는데 집은 그녀의 옷차림과 다르게 참 가난한 모습이었어요. 그때 방콕이란 도시의 화려함 뒤에 가려진 '날것'을 봤다는 느낌을 받았죠."
◆'나'를 찾아 떠났던 여행
지금이야 스스럼없이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걸고 같이 여행도 하지만, 어렸을 때의 이 대표는 지금과 달랐다. 20대 초반의 이 대표는 그저 남들을 따라가는, 부모님 말씀대로 살아왔던 평범한 학생이었다. 하지만 어느날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니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내가 선택했다고 믿은 삶을 잘 생각해보니 결국 부모님의 뜻이었거나 남의 시선에 영향을 받은 것들이더라고요. 내가 정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어요. 남들과 비슷한 삶을 살고, 그 선택들에 나의 의지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뭔가 비참해지더라고요. 일단 '나'를 찾는 게 먼저라고 생각했어요."
이 대표는 이때부터 '나'를 찾는 시간을 가졌다. 이런저런 방황의 시간을 가지며 '나'에 대한 고민을 계속해나갔다. 고민과 방황이 절정에 달한 순간 이 대표는 세상이 궁금해졌다. 자신의 속마음만큼 세상 사람들의 생각도 궁금해진 것이다. 이를 아는 방법은 세상과 직접 맞닥뜨리는 것밖에 없었다. 이 대표가 선택한 방법은 여행이었다.
여행을 통해 이 대표는 많은 사람을 만나고 사는 모습을 봤다. 그리고 오롯이 자신의 인생을 느꼈다. 이 대표는 여행을 통해 주변의 기대에 흔들리는 자신과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허세를 부렸던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부질없는 짓이었는지를 깨달았다. 20대 초반 젊은 시절 벼랑 끝에 선 듯한 절박한 마음이 만들어낸 깨달음이었다.
"학교에서 배운 것보다 여행하면서 배운 것들이 더 많아요. 성격도 많이 바뀌었어요. 예전에는 그저 평범한 대학생 모습이었다면 여행을 하면서 생긴 사람들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자연스럽게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법을 배웠어요. 제일 크게 배운 건 '나 혼자 행복해질 수 없다'는 거예요. 놀더라도 사람들 속에서 같이 놀아야 더 재미있다는 사실을 여행을 통해서 배운 거죠."
◆다님, '보통 대구'를 보여줄 수 있는 곳
2011년 6월 이 대표는 대구 중구 봉산문화2길에 '다님 백패커스'를 열었다. '다님 백패커스'는 이 대표가 2009년 서울 홍대 입구에서 스태프로서 또는 동업자로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해 본 경험을 바탕으로 문을 연 대구 최초의 게스트하우스다. 당시 서울에서 운영하던 게스트하우스도 장사가 잘되던 상황에서 "대구로 내려가겠다"는 이 대표의 말에 지인들은 기대 반 걱정 반이었다.
"'대구에 게스트하우스를 열겠다'고 하니 '대구에 볼 것도 없는데 게스트하우스가 되겠냐'라고 걱정하는 분이 많았어요. 하지만 서울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할 때 만나서 이야기해 본 외국인들을 보니 가능성이 보였어요. 일단 대구가 KTX나 고속버스 등 대중교통이 좋아 서울이나 부산과 같은 대도시 관광지 접근이 쉽다고 봤어요. 그리고 '론리 플래닛'과 같은 외국 여행 관련 서적에도 대구는 '한국에서 세 번째로 큰 대도시'로 소개됩니다. 당연히 외국인들은 호기심을 가져요. 그리고 대구 주변에 관광지들이 많으니 관광객들이 대구를 기점으로 이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게스트하우스 불모지였던 대구에 이 대표가 처음으로 다님 백패커스를 연 뒤 알음알음 여행객들이 이곳을 찾아왔다. 때마침 열린 2011 대구세계육상선수권 대회는 저렴한 숙소를 찾는 외국인들에게 다님 백패커스를 알리는 큰 기회였다. 다님 백패커스를 시작으로 현재 대구에는 10여 곳의 게스트하우스가 문을 열었다.
이 대표가 추구하는 다님 백패커스의 모습은 '보통 대구를 보여줄 수 있는 곳'이다. 다님 백패커스의 내부는 우리가 흔히 보는 가정집 모습이다. 굳이 예쁘게 보이기 위한 인테리어는 하지 않았다. 이 대표는 다님 백패커스가 대구 사람과 대구에 놀러 오는 사람들이 서로 어울리는 장이 되기를 소망한다.
"많은 게스트하우스를 둘러봤는데, 대부분 모양이 비슷비슷해요. 게스트하우스도 점점 획일화되어가는 느낌이 들어 안타까울 때가 있죠. 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게스트하우스는 나에게 그곳의 삶을 보여주면서 정을 나누는 곳이었어요. 일상적인 부분이 기억에 남을 때가 많거든요. 예전 라오스 루앙프라방의 한 게스트하우스에서 특급호텔이 어울릴 듯한 한 노부부가 '아들이 여기서 잤는데 너무 좋다고 해서 아들이 이곳에서 찍은 필름카메라 사진을 갖다줄 겸 해서 왔다'는 말을 들었을 때 가슴이 찡했어요. 다님 백패커스도 그런 곳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이화섭기자 lhssk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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