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서각의 시와 함께] 청령일기-도광의(1941~)

입력 2014-01-20 07:50:22

잠자리 한가로이 날고 있다

햇볕이 잔잔하고 고요하다

오수(午睡)에 빛나는 못물 보고 있노라니

연잎 위에 앉은 잠자리처럼

바이올린 한 줄 위에 나는 소리처럼

하루의 생각이 단순해진다.

- 시집 『하양의 강물』, 만인사, 2012.

도광의 시인은 키가 헌칠하고 외모가 준수하다. 젊은 날 대구 문단의 로맨티시스트로 문인들 사이에 그 이름이 높았다. 후배 시인들은 그를 통해서 문학적 분위기에 젖으며 문학과 가까워지기도 했다. 그리고 많은 문사를 길러 내시기도 했다. 안도현 시인은 어린 날, '도광의 시인은 비가 와도 우산을 쓰지 않는다'는 전설을 들으며 시인의 꿈을 키우기도 했다고 한다.

며칠 전 전화를 걸어 주소를 물으셨다. 문인 주소록을 찾아 시집을 보냈다는 말씀이다. 오랜만에 듣는 반가운 목소리였다. 옛일이 생각났다. 아주 오래전 조기섭 시인, 구석본 시인과 함께 영주에 오신 적이 있다. 밤 깊도록 맥주를 배불리 마신 다음 전봇대에 나란히 서서 경범죄를 지은 적이 있다. 밤하늘에는 별이 총총 떠 있었다. 아직도 그때 그의 명언이 기억에 남아 있다. "술 많이 마시고 이렇게 오줌 잘 나오는 기이, 그 기이 마, 행복이 아니겠나."

잠자리를 잠자리라 하지 않고 굳이 한자어 청령이라 한 것에서 시인의 선비 취향을 읽을 수 있다. 화자는 하오의 햇살 눈부시게 내리는 연못의 잔잔한 물을 바라보고 있다. 연잎 위에 앉은 잠자리도 바라보고 있다. 연잎에 앉은 잠자리라는 시각적 이미지를 통해 바이올린 소리라는 청각적 이미지를 연상한다. 아마 바흐의 G현을 떠올렸으리라. 고요하고 쓸쓸함의 뜻을 지닌 적요(寂寥)에 젖어 있다. 관조(觀照)의 경지란 이를 두고 이르는 말일 것이다.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사물을 객관적으로 대하는 관조의 경지는, 말은 쉽지만 아무나 이를 수 있는 것은 아니리라.

시인 kweon21@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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