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비즈니스 인사이더'에 '역사에 대한 대표적인 아홉 가지 오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그중 하나가 전구 발명을 둘러싼 오해다. 에디슨이 최초로 전구를 만들었다는 상식은 틀렸다는 것이다. 전구를 최초로 고안한 사람은 영국 화학자 험프리 데이비다. 하지만 아크등은 빛이 너무 세 가정에서는 쓸 수 없었다. 에디슨이 이를 개량해 1879년 실용화에 성공해 백열전구가 '인류 두 번째 불'이 됐다.
에디슨의 백열전구는 단점도 많았다. 소모 전력의 95%가 열로 방출되고 빛으로 바뀌는 것은 고작 5%다. 전구 수명도 짧았다. 그럼에도 백열등은 컴컴한 밤을 밝히는 수훈갑이었다. 이 땅에 백열등이 처음 켜진 것은 1887년 3월 경복궁 후원인 향원정과 건청궁 앞마당이었다. 종로 거리에도 등장해 사람들을 놀래켰다. 전차 정거장 등에 조명등 3개가 점등되면서 최초의 가로등이 됐다.
값이 싼 백열전구는 전통시장이나 양계장 등에서 널리 쓰인다. 130년이 지났지만 옛 모습 그대로 간직한 유일한 공산품이다. 하지만 형광등 때문에 빛을 잃기 시작했고 LED의 출현은 치명타가 됐다. 새해 1일부터 가정용 백열전구의 생산과 수입이 모두 금지되기 때문이다.
최근 한 대형마트에서 '반값 LED' 전구를 내놓자 불티나게 팔렸다. 가벼운 백열전구에 비해 그동안 LED 전구값은 그 무게만큼 묵직했다. 3만 원을 훌쩍 넘어 손이 오그라들게 했다. 불과 2년 사이 형광등값까지 내려왔다. 중국산 LED는 5천~8천 원대다. 퇴근길 가로등을 유심히 봤더니 어느새 LED로 바뀌어 있었고 아파트 지하 주차장도 센서로 켜지는 LED로 탈바꿈했다. 원전 사고의 여파로 일본은 LED 보급률이 60%에 달한다. 우리도 2020년 LED 보급률 60%를 목표로 '2060' 정책을 추진 중이지만 아직 10%에도 못 미친다. LED로 완전 교체되면 50만 가구가 1년간 소비하는 전력이 절약된단다.
1970년대만 해도 국내 30여 개 업체가 백열전구를 만들었다. 하나둘 문을 닫고 국내 백열전구 생산 업체는 대구의 한 곳뿐이다. 파호동에 본사를 둔 '일광'이다. 하지만 일광 상표를 단 백열등도 찾기 힘들게 됐다. 밤새도록 미싱을 돌리던 여공의 손등 위에도, 샐러리맨의 피곤한 하루를 달래던 포장마차에서도 60촉 백열등 불빛을 더는 보기 힘들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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