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문화도시 현장을 가다] (상)구마모토의 도시 디자인

입력 2013-12-23 07:29:03

골목 안 파출소도 디자인 日 관광객 "예쁘다" 몰려

문화가 세계 경제 지도를 바꾸고 있다. 세계화에 따라 경쟁이 국경을 넘어 도시와 지역 단위로 바뀌면서 '문화'가 도시의 경쟁력이 됐다. '고담시티', '보수도시'라는 대구의 오명(汚名)을 벗겨준 것 역시 문화였다. 역사문화유산을 찾아내 이야기를 입히자 연간 2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대구로 몰려들었다. '문화도시 대구'라는 변신이 가져다준 경제적'사회적 효과는 산출하기 어려울 만큼 크다.

이러한 흐름을 타고 세계는 도심에 '문화'라는 총알을 장전하는 데 총력을 쏟고 있다. 보존하거나 새롭게 만들거나 방치된 곳을 재활용하는 등 방법은 각양각색이다. 일본열도 남쪽, 부산에서 비행기를 타면 한 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 거리에 있는 규슈는 문화로 도심의 가치를 높이는 작업이 이미 한창이다. 후쿠오카와 구마모토의 문화도시로의 변화를 현장 취재했다.

(상)건축물로 도시를 디자인한 구마모토

외지에 가게 되면 가장 먼저 마주하게 되는 것은 건물이다. 도시에서 가장 흔한 것이 건물이기 때문이다. 이는 건물이 도시의 첫인상을 만드는 중요한 요소임을 말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산업화 시대부터 건물을 짓는 데만 급급해 건물의 외관, 쓰는 사람은 뒷전이었다. 막무가내로 지어진 건물은 결과적으로 도심 미관을 망치는 흉물이 되고 있다.

반대로 구마모토는 건물에 디자인을 입혀 도심 미관을 가꾸는 작업을 하고 있다. 특별한 건물은 아니다. 공공화장실, 아파트, 도서관, 파출소 등 일상생활에서 이용하는 건물이 대상이다. 눈만 돌리면 예술품 같은 건물이 보인다. 매년 수많은 건축가와 관광객이 이러한 건물을 보기 위해 구마모토를 찾고 있으며, 이는 구마모토 경제 활성화를 가져왔다.

◆만들어진 문화도시

구마모토는 세계적인 건축도시다. 거대한 규모의 구마모토 성, 액자 형태의 구마모토 역 서쪽 출입구, 역삼각형 경찰서, 숲 속에 있는 듯한 공공화장실 등. 여기에 구마모토의 전통과 현대를 이어주는 노면 전차까지. 점점이 이어진 이색 건물들을 쫓아가다 보면 구마모토가 거대한 건축박물관처럼 느껴진다.

지금이야 구마모토가 수많은 관광객이 다녀가는 유명 건축도시로 알려졌지만 태생은 건축과 전혀 무관한 곳이었다. 화재로 무너진 구마모토 성은 1960년 복원된 것이며 다른 건물도 철저히 계획에 따라 만들어졌다. 사토 세이지(佐藤誠治) 오이타대학 도시계획과 공학박사는 "도심경관을 만들고 보호하고 성장시키는 것은 어느 도시를 막론하고 중요하다. 구마모토는 이러한 경관 정책에 의해 만들어진 대표적 사례"라고 말했다.

1980년대 구마모토는 여러 과제에 직면해 있었다. 전통 농업 지역이었던 구마모토는 산업화의 뒤안길로 밀려 재정적으로 점점 낙후되고 있었다. 수은에 의한 공해병인 미나마타병이 발생하면서 환경재앙의 진원지라는 이미지까지 덧씌워졌다.

구마모토에 닥친 위기를 타파한 것은 문화였다. 전 일본 총리 호소가와 모리히로(細川護熙)는 1983년 구마모토현 지사로 당선되면서 "남는 것은 문화밖에 없다"고 말했다. 새로운 산업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사람과 기업을 불러 모을 매력적인 환경이 우선이라고 판단한 것.

◆건축박물관으로 탈바꿈

호소가와 지사가 주목한 것은 건물이었다. 도시를 점점이 채우고 있는 건물이 조각 같은 예술품이 된다면 전체 미관을 바꿀 수 있다고 자신했다. 구마모토 '아트폴리스'(Art Police) 계획이다. 아트폴리스의 전제는 '사람'이다. 사용하는 사람이 건물에 대해 가지는 생각, 편리성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건축가의 도움 아래 사용할 시민들의 의견과 주변 환경을 고려해 건물을 단장했다.

무서운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경찰서와 파출소는 익살스러운 디자인을 입혀 주민과 경찰 간의 거리를 좁혔다. 주걱모양의 지붕으로 뒤덮인 구마모토역 광장은 구마모토 성의 긴 벽을 이미지화했다. 기능면에서는 역과 거리를 잇는 통로와 대피소로, 의미면에서는 강한 햇살로부터 사람들을 지키는 거대한 양산이 되겠다는 의미를 담았다. 기능'디자인'의미 3박자를 골고루 갖춘 아트폴리스를 통해 1988년부터 지난 2012년까지 도로, 다리, 파출소, 도서관 등에 걸쳐 87개 건축물에 예술과 문화를 입혔으며,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이정호 경북대학교 건축학부 교수는 "이전의 건축물은 기본 기능을 하기 위해 말 그대로 쌓아올리는 데만 집중한 공급 중심이었다면 아트폴리스는 사용자를 배려한 수요 중심이다"며 "건물을 이용하는 지역주민의 활용도를 높여 주민들의 문화의식과 도심미관, 경제 향상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대구의 근대건축박물관, 북성로

대구에도 거리 근대건축박물관이 있다. 공구골목으로 유명한 북성로다. 일제강점기 대구 최대 번화가였던 북성로에는 근대 건축물 100여 개가 남겨 있다. 해방 후 공구점으로 사용됐지만 수십 년이 흐른 지금, 산업 환경 변화로 공구점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졌다. 상당수가 노후화로 옛 모습을 잃어가거나 빈집이 됐고, 북성로는 점점 흉흉해졌다.

최근 중구청은 북성로의 잃어버린 옛 명성을 되찾는 작업에 나서고 있다. 근대 건축물의 원형을 최대한 살려 문화 자산으로 활용하겠다는 '북성로 근대 건축물 리노베이션' 사업이다. 2011년부터 민간에 의해 이미 몇몇 근대 건축물이 새 단장을 마치고 카페, 박물관, 사무실, 게스트하우스 등으로 활용되고 있다. 중구청은 앞으로 보존 가치가 높은 건축물 30여 개를 선정해 수리비 일부를 지원하는 방법으로 사업을 이어갈 계획이다.

초점은 구마모토와 같은 건축물이지만 방법은 다르다. 구마모토가 창조라면, 북성로는 복원'재생이다. 하지만 목표는 같다. 경제 활성화와 도심 미관 정비, 시민 문화의식 향상이다. 효과는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도심 한복판에 자리한 근대 건축물은 이국적 풍경을 만들어 국내외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젊은이가 오가면서 을씨년스러웠던 북성로는 활기를 되찾고 있다. 주민과 상인도 떠들썩해진 마을이 반갑기만 하다.

권상구 중구 도시만들기 지원센터 사무국장은 "한국에서 일제강점기 목조 여관이 유일하게 남아 있는 북성로는 타임캡슐과 같은 지역이다"며 "숨죽여 있던 북성로에 문화를 불어넣어 주민, 상인, 행정 모두의 행복을 증대시키겠다"고 말했다.

신선화기자 freshgir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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