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지묘동 한들도서관, 주민 참여도 높은곳…"2년 정도만 연기해주면…
주민들이 십시일반 정성을 모아 마련한 마을도서관이 문 닫을 처지에 놓였다. 8년 넘게 건물을 무상으로 임대해준 건물주가 연말까지 도서관의 이전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서관 측은 추가 임대료의 부담이 큰 데다 이전할 수 있는 마땅한 공간도 없어 고민에 빠졌다.
◆주민들의 마을도서관 이전 위기=2005년 5월 문을 연 동구 지묘동의 한들마을도서관은 책을 대여하는 것뿐만 아니라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마을 공동체의 구심점이 돼 왔다. 장서 2만여 권에 현재 회원은 2천여 가구, 하루 이용객이 최고 100여 명에 이른다. 도서관은 책 읽어주기 교실과 한국사 및 일본어 강좌, 고전문학 읽기, 작은 음악회, 영화 상영 등 자체 프로그램을 통해 지역민의 문화 공간 역할을 해오고 있다.
건강 서적을 빌리러 도서관을 찾은 박모(66'동구 지묘동) 씨는 "초창기보다 책도 많이 늘고 다양한 강좌도 생기는 등 도서관으로서 이제야 자리를 잡았다"며 "지묘동은 도심과 다소 떨어져 있어서 어느 지역보다도 마을도서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문제는 개관 8년이 다 돼 가던 올 4월 시작됐다. 도서관은 건물주인 공산농협으로부터 공문 한 통을 받았다. 공문에는 '농협의 고유자산인 건물의 효율적인 이용과 사고 방지 및 안전 관리를 위해 2013년 12월 말까지 이전해 줄 것을 요청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공산농협은 11월 다시 공문을 보내 이전을 재요청했다.
공산농협 관계자는 "조합원인 농민들이 농협에 회의실 하나 없는 것에 대한 불만이 컸기 때문에 총회를 거쳐 도서관 이전을 요구하기로 결정했다"며 "그동안 좋은 뜻에 동참한다는 취지로 임대료를 받지 않고 공간을 제공해 왔지만 이젠 농민들의 이전 요구에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예산과 공간의 문제로 이전 힘들어=도서관 이전의 걸림돌은 예산과 공간의 문제다. 현재 위치와 가까운 곳에 적당한 장소를 알아보고 있지만 추가 비용이 부담이다. 도서관의 올해 전체 운영비는 4천만~5천만원 정도. 대구시에서 책 구입비 2천만원과 운영비 1천500만원을 지원받았고, 나머지는 회비를 통해 충당하고 있다. 그런데 같은 동네 다른 건물들은 보증금 4천만~5천만원에 월 임대료만 130만~150만원이 든다. 도서관 측은 이미 4년 전부터 건립기금을 모아왔지만 적립금은 현재 3천여만원뿐이어서 이전 비용으로 턱없이 모자란다.
공간의 크기도 공공사립도서관 지정 기준의 최소 면적(80평'264㎡)에 모자란다. 최소 면적 기준에 맞는 공간을 지닌 건물이 현재 동네에는 없다. 결국 기준에 맞추려면 현재 동네에서 벗어나야 한다. 문제는 회원으로 가입해 있는 주민들이 이용하기 힘들어져 마을도서관이란 의미가 퇴색된다는 점이다.
도서관 측은 이전 문제 해결을 위해 이달 3일과 10일 두 차례 주민 토론회를 열어 의견을 모았다. 토론회에는 대구시의원과 동구의회 의원 등이 참석해 머리를 맞댔고, '장기적으로 도서관 연회비를 없애고 도서관을 살리는 정기 후원회를 조직하자' 등의 다양한 방안이 제시됐지만 당장 이전 문제를 해결하진 못했다.
유정실(69) 한들마을도서관장은 "인근 교회에서 공간 제공을 제안해 왔지만 충분한 크기가 되는지 따져봐야 한다. 행정기관과 정치권이 나서서 농협을 설득하고 있지만 여의치 않다"며 "도서관을 이용하는 주민 대부분은 도서관이 자립할 때까지 2년 정도 농협이 이전을 연기해 주길 바라고 있다"고 했다.
대구시 기획관리실 관계자는 "한들마을도서관은 현재 대구 내 공공사립도서관 5곳 중 주민 참여도가 높고 자체적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대표적인 곳"이라며 "이전 장소를 찾아야 하는 상황은 안타깝지만 당장 보증금을 지원하려 해도 법적 근거가 약하고 다른 도서관과의 형평성 문제가 있다"고 했다.
글'사진 서광호기자 kozm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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