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환 교수의 세상보기] 민주당은 "안녕 하신가요"

입력 2013-12-21 07:48:02

아마미야 카린(雨宮処凛)은 1975년 일본의 변방 홋카이도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아토피로 고생하고, 사춘기에는 가난 속에서 왕따, 등교 거부, 가출, 자살 미수를 되풀이한다. 아르바이트를 하면 2, 3일 만에 쫓겨나기 일쑤였다. 경제는 발전하는데 개인의 삶은 왜 더 팍팍해지는가. 자신의 어려운 생활과 경제대국 일본의 격차를 몸으로 느낀다. '내가 잘못된 것인가, 아니면 사회가 잘못된 것인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분명 둘 중 하나이다. 그녀는 후자를 선택한다. 풍요를 구가하는 일본 사회는 적어도 자기와 같은 청년층에게는 기능 부전에 빠져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때부터 사회를 향해 '이래도 좋은가'라는 문제를 끊임없이 제기한다. 신자유주의로 심화된 경쟁과 양극화 속에서 생겨난 '새로운 형태의 가난'을 탈피하기 위해서였다. 그녀는 20세 때 우익 활동을 시작한다. 그런데 왜 우익 활동에서 그 해결 방법을 찾으려 했을까. '진보 진영 역시 하나의 기득권 세력으로 보였고, 그들이 외치는 언어는 어른들의 겉치레'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라고 그녀는 고백했다.

그 후 그녀는 현실과 미래에 대한 불안을 견디지 못하는 젊은이들의 팍팍한 삶은 신자유주의의 확대에 그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고 약 6년간의 우익 활동을 청산한다. 2001년부터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저술 활동을 왕성하게 하면서, 단체 결성, 데모 등 직접 행동에 나서기도 했다. 2008년에는 노동자의 한 달 급료에 해당하는 300만 원짜리 양복을 1년에 열 벌이나 사 입는다는 아소 다로 총리의 사치를 비난하고 정권 타도 운동을 벌였다. 현재는 프레카리아트(precariat, 비정규직 및 실업)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취재와 집필 활동에 매진하면서 진보 진영의 대표 논객이 되어 있다. '살게 하라-난민화하는 젊은이들'(2007)은 그녀의 대표작이다. 그녀가 이런 활동을 적극적으로 한 시기는 일본의 진보 세력이 쇠락하고 보수화가 진전된 때이다.

아마미야의 '이래도 좋은가'라는 문제의식이 지금 한국에서는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대자보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대자보는 철도노조 파업, 비정규직 문제, 국가기관 선거 개입 의혹, 밀양 송전탑 문제 등에 대해 '이래도 좋은가'라고 묻고 있다. 지금까지 남의 일로 여겨졌던 일들이 알고 보니 '내가 사는 곳'의 나의 문제라고 외친다. 그런데 이 대자보 한 장이 왜 많은 사람의 공명판을 두드리고 있을까. 자기의 잘못으로만 여기고 순응하고 체념했던 척박한 현실에 '사회가 잘못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비판적 물음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그 밑바탕에는 진보적 가치에 대한 탈정치화된 젊은 세대의 자기반성적 물음이 깔려 있다.

젊은이들의 탈정치화는 계속되어 왔다. 각종 선거에서 젊은 층의 투표율이 낮아지고 있다. 낮은 투표율은 유권자 시장의 축소를 의미하고 정당 또는 정치 세력의 지배력 약화를 초래했다. 또 이는 젊은 층의 탈정치화 경향을 더욱 가속화시킨다. 젊은 층이 진보와 개혁의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면, 그들의 탈정치화는 진보 진영의 약화를 가져오고, 진보 진영의 약화는 젊은 층의 열망을 담아내지 못하게 된다. 작년 대통령선거에서 예상외로 낮은 젊은 층의 투표, 그리고 선거 후 진보의 한 축인 민주당이 죽을 쑤고 힘을 받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쇠락한 민주당에 젊은 층은 더 이상 그들의 희망을 의탁하지 못하고 있다.

대자보 현상은 야당인 민주당의 무기력이 큰 몫을 하고 있다. 민주당이 제 역할을 하면 대자보도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대자보의 내용은 대부분 정치적으로, 이념적으로 민주당이 해내야 할 몫이다. 민주주의의 근간을 해친 국가기관 대선 개입 문제를 힘 있게 밀어붙이지 못하고, 노동자들의 파업권도 보장해주지 못하고, 사회적 갈등에 대해서는 속수무책으로 있으니, 이 정당이 왜 존재해야 하는지 묻게 된다. 대자보를 통해 그들은 민주당에 '이래도 좋은가' '민주당은 안녕한가'를 되묻고 있다. 민주당은 또 하나의 기득권 세력으로 보이고, 그들이 외치는 언어는 겉치레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이성환 계명대교수·국경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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