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웅의 노거수와 사람들] 3·1운동 민족대표 이갑성 선생과 신명학교 향나무

입력 2013-12-19 14:08:05

선생의 나무 곁에 일본산 향나무 버티고 있어

여자사립학교의 명문 신명학교(현 신명고)는 올해로 개교 111주년을 맞는다. 시대의 변화에 맞춰 남녀 공학으로 바뀌었지만 출발 당시에는 여성의 지위 향상과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07년 개교했으나 출발은 그 5년 전인 190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선교사 부해리의 부인 부르엔(Bruen) 여사가 의료선교사 존슨(Johnson'동산병원 초대 원장)의 부인 에디스 파커(Parker)의 바느질반과 놀스 (Nourse)라는 처녀가 가르치던 14명의 소녀를 데리고 신명여자소학교를 설립하니 이때가 1902년 5월 10일로 대구 최초의 근대여성교육기관이다. 이후 1907년 10월 23일 부르엔 여사가 남산정 동산(현 동산길 17)에 신명여자중학교를 개교했다. 1951년 8월 31일 여중, 여고가 분리되어 오늘에 이른다.

이 학교 행정실 이상호 선생으로부터 교정의 한 나무를 소개받으니 1975년 이갑성(李甲成) 선생이 심은 향나무였다.

선생은 본관이 경주로 아호는 연당(硏堂)이다. 1886년 대구에서 태어나 1915년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를 졸업했다. 1919년 최연소자로 청년층을 대표하여 3'1운동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민족독립선언서에 서명했다.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를 비롯한 각급 학교의 시위운동을 주도하고 태화관을 중심으로 한 민족대표의 서명운동과 전단 살포의 중책을 맡아 활동하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26년 YMCA의 이사를 맡아 청년들을 지도하였으며, 1931년 경성공업의 지배인을 지냈다. 같은 해 신간회 사건으로 상하이로 망명했다가, 귀국한 뒤 1940년 흥업구락부사건으로 체포되어 7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그는 해방 후 독립촉성국민회 회장을 지냈으며, 1947년 김규식 등과 협력해 과도입법의원으로 활동했다. 1950년 제2대 민의원에 당선됐고, 1952년 국민회의 최고위원에 추대되었다. 1953년 자유당 최고위원에 임명되었고, 33인 유족회장, 국산부흥회장 등을 역임했다. 1963년 민주공화당 창당 발기위원을 지냈고, 1965년 광복회장, 이준열사기념사업회 총재를 맡았다. 삼일동지회 고문을 지내고 80세 이후에는 민족대표 33인의 유일한 생존자로서, 해마다 거행되는 3'1절 기념행사에 참석하다가 1981년 95세로 돌아가셨으며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받았다.(참고자료: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

'신명100년사'에서는 1972년 제65주년 개교기념으로 '신명 3'1운동 기념탑'을 건립한 것을 치하하기 위해 방문했다고 한다. 그러나 최근 보도(매일신문 12월 7일 자)에 의하면 설립자의 남편 부해리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소년야구단을 만들었고 14세 소년이었던 이갑성은 그 단원이었다고 하니 이런 겹친 인연으로 신명동산을 찾은 것이 아닌가 한다. 나무는 그때 심은 것 같다.

'신명 3'1운동약사'는 1919년 3월 8일 대구만세운동의 그날을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교사 이재인과 졸업생 임봉선, 이선애, 재학생 50여 명이 한마음이 되어 '대한독립만세'를 불렀다. 추애경, 최정술을 비롯한 일부 학생들은 대구만세운동의 시발점인 큰장터에서, 이영현을 비롯한 통학생들은 동산교 근처에서, 그리고 김학진을 비롯한 20여 명의 기숙사생들은 약전골목에서 시민들과 합류함으로써 대구의 만세운동은 절정을 이루었다. 이에 다급해진 일본 경찰은 헌병과 육군병력을 동원하여 총칼로 우리 학생들과 시위 군중들을 마구 두들겨 패면서 잡아갔다. 이때 붙잡힌 학생들은 2주간 구류에 처해졌으며 이선애는 6월, 이재인'이봉선은 1년의 선고를 받고 고통스러운 옥살이를 치렀다.

(중략) 신명의 3'1만세운동은 국권회복과 여권신장을 목적으로 하는 대한애국부인회와 조선여자기독청년회의 활동을 통해서 꾸준히 계승'발전되었으며 광복의 밑거름이 되었다."

뿌리 깊은 사학 명문 신명학교의 자랑스러운 모습이다. 그러나 3'1운동 민족대표 이갑성 선생이 심은 향나무 옆에 일본산 가이즈카향나무가 보란 듯이 서 있어 아쉽다. 베든지 딴 곳으로 옮겨 심어야 할 것 같다.

대구생명의 숲 운영위원(ljw167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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