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계는 그가 '변호'한다
지금, 배우 송강호에 대한 설명이 달리 필요할까? 올해 수많은 배우들이 최고의 해를 보냈지만, 2013년의 대미를 장식하는 12월의 최고 배우는 단연 송강호이다. 그리고 올해 한국영화계 최고 배우도 송강호이다. 이 말은 아무도 부정하지 못하는 명제가 되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올해 상반기, 송강호는 이제 그의 시대가 저문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별 활동을 보여주지 못했다. 2011년에 개봉한 '하울링'과 '푸른 소금'이 흥행에 실패하면서 그는 변방에 머물러 있었는데, 그 사이 '포스트 송강호'를 노린 배우들의 맹활약이 펼쳐지며 춘추전국시대를 열었다.
2013년의 시작은 류승룡이 열었다. 지난해 '광해, 왕이 된 남자'로 천만 관객의 시대를 열더니 새해 들어서자마자 '7번 방의 선물'로 최고의 해를 보냈다. 봄이 되자 황정민이 기지개를 켰다. '신세계'로 미친 듯한 존재감을 보여주더니 '전설의 주먹'에서 그가 왜 진정한 연기자라는 평을 받는지 증명해 보였다. 여름이 되니 하정우가 자신의 세상을 만들었다. 겨울의 '베를린'에 이어, 단독으로 주연한 '더 테러 라이브'를 통해 가장 핫한 배우가 되었고, 가을에는 감독으로 데뷔하면서 최고의 해를 보냈다.
이때까지 송강호는 없었다. 그는 2012년에도 단 한 편의 영화도 개봉하지 못했다. 그러나 여름이 되자 '설국열차'로 송강호가 컴백했다는 것을 조용하게 알렸다. 외국에서 촬영한, 외국 배우와 함께한, 어마어마한 규모의 글로벌 프로젝트에서 송강호는 유수의 배우와 함께하면서도 전혀 주눅 들지 않고 자신의 역할을 묵묵히 소화해냈다. 이미 '살인의 추억', '괴물'에서 함께한 경험이 있는 봉준호와의 작업이라 부담이 덜했을 수도 있다. 이렇게 송강호는 확실하게 컴백했다.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설국열차'의 흥행이 끝나기도 전에 '설국열차'와는 전혀 다른 성향의 영화에 송강호가 주연을 한 것이다. '관상'이다. '설국열차'가 칸으로 나누어진 계급 사회를 넘어서고자 하는 욕망을 투쟁적인 설정으로 재현한 이야기라면, '관상'은 쿠데타를 이룩한 정치 세력이 어떻게 민중의 일거수일투족을 관리하면서 패배주의에 빠지게 하는지 보여준 이야기였다. 즉 싸워야 한다는 설정과 싸워봐야 지고 만다는 설정의 전혀 다른 역할을 송강호가 동시에 보여준 것이다.
두 영화의 전혀 다른 연기로 송강호는 최고의 배우라는 것을 새삼 증명했다. '설국열차'로 934만 명, '관상'으로 913만 명을 동원하면서 대중적으로도 무척이나 행복한 경험을 했다. 그런데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변호인'이 가세한 것이다. 누가 뭐래도 '변호인'은 송강호의 영화이다. 이 영화에서 송강호는 이제까지 전혀 보여주지 않았던 연기를 눈부시게 펼친다.
영화 초반, 송강호는 초기의 그가 그랬던 것처럼 코미디 분위기를 최대한 살린다. 상고 출신의 변호사가 부산에서 개업하는 과정, 무시를 당하면서도 부동산 전문 변호사, 세금 전문 변호사로 돈을 버는 과정을 재미있게 그려나간다. '분위기 메이커' 송강호가 이걸 끌고 가는데, 초기 송강호가 스크린에서 관객들의 확실한 눈도장을 받은 것이 코미디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는 것 같다. 지금도 가끔 회자하는 '넘버3'의 그 유명한 장면, '조용한 가족'의 빼놓을 수 없는 웃음들, 송강호를 주연으로 만든 '반칙왕'의 그 어마어마한 웃음, 그리고 분단을 코미디와 결합한 '공동경비구역 JSA'의 웃음 등은 송강호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변호인'의 후반부는 감성을 자극하는 코드로 진행된다. 단골 국밥집의 아들이 시국 사건에 얽매인 것을 알고 그는 기꺼이 변호인이 된다. 그리고 이제 다섯 번의 공판이 벌어진다. 여기서 송강호는 놀라운 연기를 한다. 연기생활을 하며 잔뼈가 굵은 그답게 법정을 혼자 지배하듯이 무서운 '원맨쇼'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제까지 최민식이나 설경구가 이런 연기를 보여준 적이 있었지만, 송강호는 그렇지 않았다. 그는 다른 배우와 어울리면서, 그를 배려하는 연기를 해왔다. '밀양'에서의 연기를 보라. 그는 전도연의 파트너가 아니라 전도연의 연기를 돋보이게 하는 완벽한 조연이었다. 그런데 이제 그가 달라졌다. 이 말을 다르게 하면 그는 이제 누구보다 폭넓은 연기를 하고 있다.
대중들이 송강호에 대해 오해하는 것이 하나 있다. 그가 매우 많은 영화에 출연했다고 착각하는 것인데, 절대 그렇지 않다. 그가 본격적으로 영화 활동을 시작한 1998년의 '조용한 가족'에서부터 2013년의 '변호인'까지 모두 합쳐도 20편밖에 되지 않는다. 더구나 그는 TV 드라마를 한 편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대중들에게 송강호가 낯익은 것은 그의 영화가 많은 흥행을 했거나, 흥행을 하지 않았더라도 대부분 의미 있는 역할이거나 영화였기 때문이다. 그는 이창동, 박찬욱, 봉준호, 김지운 등 당대 최고의 감독과 공히 두 편 이상씩 작업했다. 잘생긴 외모는 아니지만, 코미디와 멜로, 조폭드라마까지 모두 섭렵한다. 게다가 그가 영화에 몰입하면 배우 송강호가 보이기보다는 극 중의 캐릭터만 살아난다. 나는 송강호보다 캐릭터 소화력이 뛰어난 배우를 아직 보지 못했다. 그는 웃음과 울음을 모두 소화하는, 진정한 우리 시대의 광대이다.
영화평론가'광운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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