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사만어] 토사구팽

입력 2013-12-10 07:49:18

중국 춘추시대 월나라 왕 구천이 절치부심 끝에 오나라를 멸망시키고 패권을 거머쥘 수 있었던 것은 범려라는 명신(名臣)의 보좌가 있었기 때문이다. 구천은 공을 세운 범려에게 상장군의 자리를 내줬지만, 범려는 몰래 월나라를 떠났다.

월왕 구천이 고난을 함께할 수는 있지만, 영화를 같이 누릴 수 있는 인물은 아니라는 판단에서였다. 범려는 또 다른 공신으로 승상에 임명된 문종에게 편지를 보냈다.

'새 사냥이 끝나면 좋은 활도 사장되고, 교활한 토끼를 잡고 나면 사냥개를 삶아 먹는다'(蜚鳥盡, 良弓藏, 狡兎死, 走狗烹)는 내용으로 피신을 권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문종은 월나라에 남아 있다가 반역자로 몰려 자결하게 된다.

토사구팽(兎死狗烹)이란 고사성어의 유래이다. 이후 토사구팽은 필요할 때는 요긴하게 쓰다가 필요 없을 때는 야박하게 버리는 경우를 빗대어 쓰이는 유명한 문자가 되었다.

한고조 유방과 대장군 한신의 이야기도 토사구팽의 전형이다. 초나라 항우와 패권 다툼에서 승리해 천하통일을 이룬 한고조 유방의 일등공신은 한신이었다. 한신은 그래서 초왕(楚王)으로 임명되었지만, 그 세력을 견제하는 유방에 의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정작 문자의 원뜻에 충실한 토사구팽은 최근 캐나다에서 일어났다. 카누에 몇 달치 식량을 싣고 독일산 셰퍼드와 함께 오지 여행에 나선 40대 남자와 애견이 화제의 주인공이다.

여행 중 남자가 야생 곰의 공격을 받게 되자 개가 달려들어 주인의 목숨을 구했는데, 조난을 당해 굶주리던 주인이 사흘 만에 충견을 잡아먹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 후 3개월 동안 초근목피로 연명하다 구조된 이 남자를 두고 생존전문가와 동물애호가 사이에 평가가 엇갈렸다고 한다.

북한의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의 실각설로 북한판 토사구팽이 재연되는 게 아닌가 하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장성택은 2008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뇌출혈로 쓰러지자 권력 공백기를 메우면서 실세로 부상했다.

그가 김정일의 핵심 세력을 제거하며 권력을 확대해 온 측면이 있지만, 김정은 권력의 초기 안정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왕조체제에서 절제되지 않은 제2인자의 권력은 화를 자초하기 마련인가.

북한의 젊은 독재자 김정은의 입장에서는 고모부인 장성택의 세력이 견제의 대상이기도 하겠지만, 자신의 권력을 받쳐주는 한 축이었던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다. 장성택에 대한 토사구팽이 김정은 권력 유지에 약이 될까 독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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