짠맛 쏙 빼 싫다던 식객들, 싱거움의 '味學' 빠져들다

입력 2013-12-07 07:08:01

건강밥상 위한 '소금과의 전쟁'…맵고 짠 경상도 음식 맛 달라지나

'빛과 소금' 예로부터 소금은 빛과 같은 존재였다. 세상을 밝게 비추는 빛처럼 세상에 없으면 안 될 만큼 가치 있는 것으로 대접받았다. 소금 때문에 수많은 전쟁이 일어났고 전염병 발병 때는 유일한 치료제였다. 우리나라에서도 '평양감사보다 소금장수'라는 말처럼 옛날에는 소금이 부와 권력의 상징이었다.

그랬던 소금이 요즘 찬밥신세다. 겨울에 눈이 내리면 길바닥에 마구잡이로 뿌릴 정도로 싸구려 취급을 받는가 하면 전통시장이나 슈퍼마켓에 가면 지천으로 널린 게 소금이다.

싸구려 취급은 그나마 다행. 최근에는 인류의 건강을 위협하는 '공공의 적'으로 전락했다. 소금은 지나치게 먹을 경우 고혈압, 비만, 당뇨병을 일으키는 '침묵의 살인자''만병의 근원'으로 지목되고 있다. 소금에 대한 인식이 급변하면서 음식점은 물론 가정에서도 소금과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다른 지방에 비해 짜게 먹는 편으로 알려진 대구경북에서 그 전쟁은 더욱 치열하다.

◆국물 줄이고, 소금 대신 새콤한 소스

2일 오전. 대구 동구 신암동에 있는 음식점 '그날'. 식당 안으로 들어서자 매콤한 냄새가 눈과 코를 자극한다. 마침 김치 담그기가 한창이다. 가게 한 귀퉁이에는 배추가 한가득 쌓여 있고 직원들이 배추를 소금에 절이고 있다. 10㎏의 배추를 절이기 위해 준비한 소금은 대접 하나, 지난해만 해도 이 식당은 대접 2개 분량의 소금을 썼지만 이번에는 양을 절반으로 줄였다. 절이는 시간도 줄여 소금이 배추에 덜 배게 했다. 대신 싱거워진 맛은 소금기가 적은 해물 육수나 액젓으로 보완했다.

이 식당 주인 김병활 씨는 "손님들에게 반찬으로 내놓는 김치를 직접 담근다. 염도가 낮으면 아삭한 부분이 좀 떨어지는데 탈수(절인 배추의 물을 빼는) 시간을 늘려 아삭한 맛이 나도록 했다"고 전했다.

같은 날 점심시간. 중구 계산동 현대백화점 대구점의 직원식당. 비빔밥을 주문했는데 음식 맛이 이상하다. 새콤달콤하다. 짭짜름한 맛을 기대했는데 싱겁다. 국도 마찬가지다. '210㎖에서 180㎖로 30㎖ 줄인 국을 제공하고 짠맛을 대체할 새콤한 맛이 강한 소스로 조리하고 있다'는 직원의 설명이다. 현대백화점 대구점 정용철 홍보팀장은 "하루 100명까지 선착순으로 저염식단을 제공한다. 직원들의 건강을 챙기기 위해 나트륨 사용량을 줄인 음식을 올해부터 제공하고 있다. 처음에는 맛이 없다고 불평했으나 이제는 줄을 설정도로 인기가 있다"고 했다.

한두 곳에서 시작된 소금과의 전쟁이 확전 양상이다. 북구 태전동에 있는 음식점은 지난 8월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 국 없는 날을 정했다. 처음에는 손님이 뚝 끊겼다. 얼큰한 국을 좋아하던 손님들이 어리둥절해하며 발걸음을 돌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손님들의 발길이 다시 늘었다. 소금이 적게 들어가는 식단을 제공하기 위해 국을 주지 않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오히려 단골손님이 늘었다.

수성구 만촌동의 삼성반점도 얼큰한 짬뽕 국물 대신 다소 싱거운 짬뽕을 대접한다. 주인 임태용 씨는 "짬뽕의 경우 다른 음식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금이 많이 들어간다. 그러나 손님의 건강을 생각해 소금 양을 절반으로 줄였다"고 했다. 남구의 베네스트 비콘 복지시설은 매주 금요일을 '김치 없는 날'로 정했다. 여기에다 국의 염도를 0.8%에서 0.5%로 낮췄다.

◆지자체'대학 나트륨 줄이기 나서

유달리 음식 맛이 짠 것으로 알려진 대구경북. 짠맛 탓에 음식 맛까지 평가절하를 당하곤 했다. 대구시와 경상북도가 올해부터 소금과의 전면전을 선포했다. 대구시는 짠맛으로 알려진 대구 음식 이미지 변화와 주민 건강을 위해 지난 3월부터 나트륨 줄이기 운동을 펼치고 있다. 올해에 영양사'조리사 보수교육과 외식업체 업주 3만5천 명에 대한 교육를 했다. 또 외식 관계자 5천100여 명에 대한 저염 조리법 교육, 이메일 등을 통한 홍보를 하고 있다. 그 결과 지난달까지 음식점 1천128곳이 나트륨 줄이기 운동에 동참했다. 이 중 학교나 공공기관 등의 집단급식소가 560곳에 이른다. 이들 음식점은 '국 없는 날'을 지정'운영하거나 저염식단 제공, 염도 알림판 운영 등 다양한 형태로 나트륨 줄이기 운동을 펼치고 있다.

동구청도 저나트륨 건강메뉴를 판매하는 슬로푸드 음식점 10곳을 지정해 홍보하는 등 지원에 나섰다. 지난해 우수 외식업 지구로 지정된 들안길 먹거리타운의 경우 80개 업소가 1개 이상의 저염식 메뉴를 내놓고 국의 평균염도를 0.8%에서 0.5%로 낮췄다.

경북도는 지난 10월부터 나트륨 줄이기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나트륨 줄이기 운동본부를 발족하고 다양한 정책을 추진 중이다. 2017년까지 나트륨 섭취를 20% 정도 줄이기 위해 저나트륨 급식주간을 운영하고 공공기관 집단급식소 나트륨 줄이기, 외식업소 업주 및 영양사'조리사 교육, 저염식 건강상차림 개발 등에 나서고 있다. 특히 전국 최초로 저나트륨 건강음식점 13곳을 지정했다. 경북도 김보영 대변인은 "앞으로 나트륨 줄이기 도민 공모전과 저염식 조리 경연대회 등을 추진해 도민들의 참여를 유도하고, 모든 단체급식소를 대상으로 나트륨 줄이기에 나설 방침이다. 아울러 저나트륨 건강음식점도 확대 지정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대학들도 지원사격을 하고 있다. 계명대 힐링사업단은 저나트륨식, 저요오드식, 저칼륨식, 저단백식 등 질환에 도움되는 식단 및 다양한 소스류를 개발해 보급하고 있다. 사업단 관계자는 "짠 음식은 심장병과 각종 성인병을 유발하는 만큼 싱거운 음식보급에 앞장서고 있다"고 했다. 경북대 식품영양학과 이연경 교수도 2005년 전국 최초로 개발한 '짠맛 미각 테스트 키트'를 보급하고 있다.

◆짠맛 대체 음식 개발

짭조름한 맛에 한 번 길들여진 입맛은 바꾸기 쉽지 않다. 그래서 짠맛을 대체할 음식 개발에 대한 노력도 진행되고 있다. 무조건 소금을 줄이는 것보다 짠맛에 중독된 지역민들의 입맛을 돌리는 유인전략이 동원되고 있는 것. 특히 연근이나 대추 등 지역 특산품을 이용한 웰빙음식이 짠 음식을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지난해부터 연근을 주재료로 한 새로운 메뉴들이 음식점에서 잇따라 등장했다. 일례로 대구시가 개발해 선보인 연근요리는 정찬과 단품(연잎수제비) 등 2가지. 정찬요리의 경우 연근 떡갈비, 탕수, 올방개 묵, 샐러드 등 4가지 전채요리에다 연잎 밥과 기본 반찬류 등이 제공된다. 짜지 않으면서도 맛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표준화'퓨전화 등을 통해 소금이 적게 들어간 향토음식 개발도 이뤄지고 있다. 사과'감 등 지역 특산물을 재료로 한 음식들이 잇따라 등장하는가 하면 향토약선요리경연대회와 대구 특산물을 이용한 제과경연대회를 통해 향토음식의 업그레이드가 이뤄지고 있다. 김미향 수성대 호텔조리계열 교수는 "대구와 경북은 식재료가 풍부해 향토음식 개발의 최적지다. 굳이 짜거나 맵게 하지 않아도 소비자의 입맛을 사로잡을 수 있는 음식 개발이 충분히 가능하다. 특히 기존 향토 음식에다 기능성을 추가하고 현대인 입맛에 맞게 퓨전화 할 경우 세계적인 경쟁상품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최창희기자 cchee@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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