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들 청탁' 법 핑계삼아 쉽게 거절…시행 기다리는 공직자 많아
'부패는 어디서 나오지?' '연줄 관계에서 나오더라' '그럼 연줄 관계는 어디서 나오지?' '청탁, 스폰서 문화에서 나오더라' '그러면 청탁, 스폰서 못하게 하면…'.
속칭 '김영란법'이 만들어지게 된 김영란 전 대법관의 자문자답이다.
이제 공직자는 청탁과 뇌물에 각별히 조심해야 할 것 같다. '김영란법'이 국회 통과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빠르면 이달 내 국회를 통과할 수도 있다. 일명 '김영란법'은 '부정청탁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방지법'으로 김영란 전 대법관이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 시절이던 지난해 8월 입법예고해 붙여진 이름이다. 김영란 전 대법관은 자신의 이름이 붙여진 '김영란법' 통과를 앞두고 어떤 생각을 할까. 2일 저녁 대구독서포럼 강연을 위해 대구를 찾은 김영란(57) 전 대법관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이하 일문일답.
-'김영란법'이란 뭔가. 만든 계기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무서운 게 바로 연줄 문화, 연고 관계다. 연줄 문화는 넓은 의미에서 계층을 고착화시키고, 좁은 의미에선 부정부패를 만든다. 아는 사람끼리 서로 도와주고 도움받는 것, 한 건 봐줬으면 다음에 다른 한 건은 돌려주는 식이다. 또 아무런 대가 관계 없이 돈 주는 스폰서 문화도 끊어야 한다. 금전이 오가지 않는 청탁과 스폰서 문화는 표리 관계다. 이 둘을 같이 끊지 않으면 청탁 문화가 해결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 법을 만들었다. 한마디로 이 법은 우리 사회에 만연된 '연줄'로 인한 일상화된 청탁과 금품 수수의 고리를 끊기 위한 법이다. 처음엔 조문 몇 개짜리 간단하고, 누구나 알기 쉬운 법을 만들려고 했는데, 하다 보니 다소 방대해졌다.
-'김영란법' 정부안이 원안보다 후퇴된 걸로 아는데.
▶지난해 8월 입법예고된 원안은 100만원 초과 금품 수수에 대해선 직무와 관련이 있든 없든 3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품의 5배 이하의 벌금을 물리는 등의 형사처벌을 하도록 했다. 또 100만원 이하의 금품 수수에 대해서도 직무 관련과 상관없이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도록 했다. 그러나 국회로 이송된 정부안은 직무와 관련해 또는 사실상 영향력을 통한 금품 수수를 한 경우에만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리도록 수정돼 후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원안이 수정된 데 대한 솔직한 심정은.
▶원안보다 후퇴했다는 논란도 있고, 실제 다소 수정된 것도 맞지만 큰 문제는 없다고 생각한다. 형사처벌이든 과태료든 공직자에겐 치명적일 수밖에 없어 큰 상관 없다. 그 과정에서 논쟁이 유발되고 토론이 일면서 학습 효과도 생겼기 때문에 후퇴 여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이 정도만 해도 잘 진행되고 있고, 큰 의미 있는 진전이라고 생각한다. 중요한 건 후퇴냐 아니냐가 아니라 사회적 합의이고 교육 효과다. '부정하면 처벌받게 된다'고 공직자는 물론 국민이 알고 조심하는 게 더 중요하다. 그 자체로도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 규제 법률이 너무 엄격하면 시행되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반발 때문에 아무도 지키지 않는 게 더 큰 일인 만큼 반발 없이 입법돼 시행되는 게 우선이다.
-원안대로 국회 통과할 가능성은.
▶원안대로 통과될 가능성도 여전히 있고, 약간 수정된 안으로 통과될 수도 있다. 원안대로 가든, 약간 수정되든, 정부안이든 후퇴 논쟁 때문에 입법이 늦춰지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국회에서 통과되면 이후 어떤 과정을 거쳐 시행되나.
▶이 법은 지난해 8월 국민권익위원회에서 입법예고했고, 올 7월 일부 수정된 정부안이 결정돼 8월 국회로 제출됐다. 현재 진행 중인 국회 법안 소위 심사가 끝나면 이달 초 국회 상임위에 정식으로 상정되고, 통과되면 법사위를 거쳐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다. 이르면 올해 안에 국회를 통과할 수 있고, 늦어도 내년 상반기엔 모두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 국회를 통과하면 대통령이 공표하게 되고, 시행 후 1년 뒤 발효되며 처벌은 2년 뒤부터 적용된다.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효과가 있을 것 같나.
▶청탁을 거절하고 싶어도 '안면' 때문에 못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 법이 만들어지면 '이젠 법 때문에 큰일 납니다'며 거절할 수 있게 된다. 조직 문화, 연줄, 관계 등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청탁을 들어주는 경우가 허다하다 보니 이 법을 환영하고, 빨리 시행되기를 기다리는 공직자가 의외로 많다. 이 법은 청탁이 들어온다고 해서 바로 신고하는 게 아니라 '들어 드릴 수 없다'고 먼저 거절하고, 그런데도 거듭 청탁하면 그때 신고하게 돼 있어 현실적이다. 시행 초기 몇몇 뇌물 사례가 발각되고, 지금과 달리 뇌물 받은 사실만으로 처벌되면 학습 효과로 인한 억제 효과가 크고, 뇌물 문화가 근절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이 법은 사회 변화를 유도하기 위한 법이다. 문화를 바꾸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지만 잘 정착될 것으로 믿는다.
이호준기자 hoper@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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