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도 이별도 문자로…신인류, 메시지 전성시대

입력 2013-11-23 09:29:52

선생님 "문자로 질문", 직장서도 SNS 공유…연인, 이별 통보엔 \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최악의 이별 통보라며 화제가 된 문자 메시지 화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최악의 이별 통보라며 화제가 된 문자 메시지 화면.

직장인 박모(31'대구 남구 대명동) 씨는 최근 받은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로 충격에 빠졌다. 새벽녘 박 씨의 휴대전화에 남겨진 문자 메시지 내용은 '헤어져'라는 여자친구의 외마디 이별통보. 박 씨는 이별에 대한 괴로움보다는 배신감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박 씨는 "만나서 말하기가 힘들었다면 적어도 전화나 편지로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3년 동안 함께했던 모든 순간들이 문자 메시지 하나로 정리된다는 사실이 너무 슬프다"고 한탄했다.

'신(新)인류의 사랑'을 문자 메시지로 정의하는 시대가 됐다. 사람들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데 있어 반드시 필요한 건 통신 수단.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 나오는 1990년대 신인류의 사랑은 '삐삐'와 '전화'로 이뤄졌다. 주인공들은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통해 상대방의 설렘'슬픔'기쁨 등 다양한 감정을 공유한다. 하지만 통신기기의 발달과 함께 문자 메시지가 음성을 대신하는 시대가 됐다. 내용은 120자 이내의 글자로, 감정은 수만 가지에 이르는 이모티콘으로 대체된 것. 문자를 통해 관계를 유지하고 개선하고 끝내는 이른바 '문자 전성시대'다.

문자 메시지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소통의 매체로 이용되고 있다. 문자를 주요 통신 수단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은 '편리함'과 '사생활 보호'를 이유로 꼽는다. 대학생 전민지(24'여'대구 북구 복현동) 씨 휴대전화는 문자 알림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전 씨의 휴대전화 속 SNS에 열려 있는 단체 채팅방만 3개. 과제, 봉사활동, 동아리 관련 모임이다. 전 씨는 "다들 바쁘니까 굳이 만나서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문자로 회의를 한다"며 "할 말만 하면 되니까 시간도 단축되고 간편하다"고 말했다. 직장인 사이에서도 회의 풍속도가 바뀌고 있다. 직장인 이모(29'대구 동구 신천동) 씨는 "팀원 모두가 스마트폰을 사용하기 때문에 SNS를 통해 그날 해야 할 일들을 공유하고 결정한다"고 말했다.

문자 소통은 사제(師弟)'가족을 불문하고 이뤄진다. 중학교 교사 김모(27'여'대구 북구 침산동) 씨는 "공부를 하다 모르는 내용이 나오면 SNS를 통해 질문을 남기라고 한다"며 "늦은 시각 전화를 하거나 받기는 서로가 껄끄럽다"고 말했다. 주부 이모(55'여'대구 동구 효목동) 씨 역시 "문자 쓰는 법을 알기 전에는 항상 전화로 안부를 물었는데 방법을 알게 된 요즘은 딸이 어떤 상황에 있는지 알 수 없으니 가능하면 문자로 연락을 한다"고 했다.

하지만 문자가 주는 편리함의 이면에는 '무심(無心)함'이 숨어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올 8월 한 결혼정보업체에서 조사한 '최악의 이별통보'에서 남성들이 꼽은 1위는 '문자나 SNS를 통한 이별통보'(34.5%)였다. 설문조사 결과를 접한 누리꾼들은 인터넷에 자신이 경험한 문자 이별통보 사례들을 올리며 '최소한의 예의도 없다' '최악이다' '왜 사귀었나 싶다' 등 부정적인 반응들을 쏟아냈다.

백승대 영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개인주의가 강화되면서 상대방에 대한 배려를 필요로 하는 대면적인 접촉보다는 간편하고 신속한 사이버 접촉이 늘어나고 있다"며 "사이버 접촉이 관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질수록 사회는 점점 더 삭막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신선화기자 freshgir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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