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재의 은퇴일기] 나 어떡해

입력 2013-10-26 07:22:31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처음으로 모교를 찾았습니다. 교문을 들어서는 순간 마음이 젖어들었지요. 30년이 훌쩍 지난 교정은 이미 옛날의 그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정다웠던 강당도 큰 나무들도 사라졌지만 모퉁이 어디에선가 친구가 반기며 나올 것만 같았습니다.

그리움이었지요. 졸업생 사진을 모아 둔 곳이 있다기에 얼른 가봤습니다. 흑백 사진 속에는 친구들과 선생님이 환하게 웃으며 서 있었습니다. 교복을 입고 말입니다. 가슴이 아릴 만큼 보고 싶었지요.

청춘의 한 페이지는 이처럼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사무칩니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이기에 청춘의 어느 대목에 이르면 목젖이 아파옵니다. 머무르고 싶은 순간들입니다.

최근 우연히 TV에서 1회 대학가요제 대상을 수상한 샌드페이블즈가 노래하는 것을 봤습니다. 열창을 하다 못해 부르르 떨며 노래를 하고 있었지요. 50대 후반의 후줄근한 얼굴과 몸이었지만 마음만은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서 노래하고 있다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었습니다. 그 느낌을 아니까 살짝 미소가 돋았지요.

노래가 끝나자 리드보컬은 대학가요제가 영원하기를 바라는 마음(내년부터 폐지하기로 결정됨)에서 참가자들이 모여 무대를 마련한다고 했습니다. 가보고 싶었습니다. 내 청춘과 함께 웃고 울던 노래를 들으며 20대 언저리를 서성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대학가요제가 한창 인기를 끌 무렵, 대학은 낭만과 우수로 가득했었습니다. 낙엽이 뒹구는 가을이면 수업을 빼먹고 낙엽이 내린 교정 위로 오후의 적막이 쌓이는 것을 하염없이 바라보곤 했지요. 청춘의 무게까지 더해지는 날이면 어쩌지 못해 걷고 또 걸었습니다. 답답하고 어딘가 분노에 차있던 그 길을 함께 해주었던 것이 바로 노래였지요.

지금도 그 당시의 노래를 들으면 바로 청춘으로 리셋되는 까닭입니다. 노래만큼 재빨리 그리고 정확하게 시간을 그 시절로 되돌려 놓는 것도 없을 듯합니다. 세월을 잊은 채 열광하며 따라 부르는 이유입니다. 아마도 그것은 청춘을 향한 그리운 몸짓이며 청춘을 위한 속절없는 송가(頌歌)일 것입니다.

은행잎이 노랗게 물들기 시작하는 10월의 마지막 주말, '나 어떡해'를 목이 터져라 부르며 지나간 청춘을 다시 한 번 불러내 볼 요량입니다.

가을은 역시 대책 없는 계절인가 봅니다.

김순재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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