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후군 홍수시대…'증후군 증후군'
아프다. 그러나 이유를 잘 모르겠다. 정확한 병명도 없다. 증세가 있고 그 증세로 고통받는 환자들은 많지만 병명은 없는 병. 바로 증후군이다.
증후군이 창궐하고 있다. 명절 증후군부터 스마트폰 증후군까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종류의 증후군들이 현대인들의 신체 건강은 물론 정신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몸과 정신을 괴롭히는 증후군은 나뭇가지처럼 하루가 다르게 새롭게 갈라진다. 세분화된 질병과 현상은 또 다른 이름의 증후군으로 증식된다. 주로 의학계에서 나타나다 최근에는 드라마'영화 등 대중문화와 사회현상으로까지 활동영역을 넓히고 있다. '증후군 증후군'이라고 해 무엇이든 다 증후군이라고 부르고 싶어하는 증후군도 생겼다.
◆증후군 홍수
증후군이 가장 좋아하는 시기는 바로 추석 등 명절. 이 시기를 전후해 숨어있던 증후군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10년차 주부 장양미(가명'40) 씨. 추석연휴 3일을 보낸 뒤 몸은 '종합병원'이다. 소화불량, 복통, 설사, 변비에다 우울'짜증'무기력증세까지…. 매년 명절마다 겪는 명절증후군이다. 올해는 근육통, 관절통, 투통에서 손목터널 증후군까지 함께 왔다. 추석 전에는 선물 증후군에 시달렸다. 시댁과 친정 식구들에게 선물을 준비하느라 고민하다 우울증까지 오게 된 것.
주부 김진영(가명'38) 씨. 추석이 끝나고 푹 쉬었지만 몸 여기저기가 쑤신다. 피곤하다며 짜증을 내보았지만 무심한 남편은 '명절 증후군이다'며 대수롭지 않게 대한다. 그런데 하루가 지나고 이틀을 꼼짝없이 쉬었지만 증상이 계속된다. 의사인 오빠에게 진찰을 받고서야 명절 증후군이 만성피로 증후군으로 넘어갔다는 진단을 받았다. 스트레스에 민감한 부신(콩팥 위 내분비샘) 기능이 떨어졌다는 것이다. 증후군이 또 다른 증후군을 낳은 셈이다.
취업준비생 성윤희(30'여) 씨는 추석연휴가 끝난후 한동안 잠잠했던 증후군이 도졌다. '삼포 증후군'이다. 청년 실업과 저출산 문제를 동시에 담은 삼포증후군은 경제 상황이 좋지 않아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겪는 우울증, 자신감 상실 등을 일컫는 신종 증후군이다. "친척들로부터 아직도 취업을 못했냐는 말고 함께 차가운 시선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직장을 못구했으니 당연히 연애나 결혼을 생각을 못하고 불안한 미래에 밤잠을 설치고 있습니다." 성 씨의 하소연이다.
일상으로 복귀하자마자 사라졌던 증후군에 시달리는 경우도 많다. 직장인 이정훈(43) 씨 역시 추석연휴가 끝나자 스마트폰 증후군이 도졌다. 소셜미디어 시대를 반영하는 'SNS 피로 증후군'은 SNS의 과다한 이용 탓에 발생하는 피로감을 뜻한다. 그는 "연휴 동안 가족'친지들과 지내느라 잠시 놓아던 스마트폰을 다시 손에 들었다. 카톡이나 페이스북은 시간이 날 때마다 보고 있다. 다른 여가 생활은 꿈도 꾸지 않게 됐다"고 했다.
맞벌이 하는 자녀를 대신해 손자손녀를 돌봐주고 있는 김연화 씨도 '손주 증후군'이 다시 시작됐다. "손자를 벌써 둘이나 키우고 있습니다. 딸이 직장 생활하느라 맡기는데 안 봐줄 수도 없네요. 병이라고 하기에는 무리지만 허리도 아프고 다리도 아픈데 손자들까지 돌보려니 힘이 듭니다."
◆진화 및 분화
증후군의 종류가 복잡다단한 사회상을 반영해 다양해지고 있다. 베르테르 증후군, 스톨홀름 증후군, 리마 증후군 등. 과거에는 자살이나 납치, 교통사고, 화재와 같은 위협적인 사건을 경험한후 생기는 증후군이 대세를 이뤘다. 그러나 최근에는 영화, 드라마 등 문화'예술적 경험과 스마트폰 등 신기술에 따른 증후군들이 홍수를 이루고 있다. 특히 현대인을 괴롭히는 피로로 인한 각종 신종 증후군들이 나타나고 있다. 만성피로 증후군, 소진 증후군, 주의력 결핍과잉 행동장애 등이 신종 증후군의 대표주자다.
추석연휴에 허리를 삐끗한 김진수(가명'44) 씨. 동네 한의원에서 침을 맞고 파스를 붙여도 낫지 않아 용하다는 한의원에 갔다. "너무 피곤해서 그래요." 한의사의 말에 김 씨는 오히려 더 피곤해졌다. '내가 왜 피로하지'라는 의문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과거 명성을 떨치던 증후군이 부활하기도 한다. 파랑새 증후군이나 피터팬 증후군 등 과거의 증후군들이 다시 등장했다. 취업난 등 어려운 현실을 외면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어른이 되기 싫어하는 파랑새 증후군이 나타나고 있다. 외모가 경쟁력이 되는 시대가 되면서 미용을 목적으로 하는 성형수술을 선택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더욱이 성형을 하지 않으면 불안해지고 습관적으로 성형수술을 받는 성형 증후군까지 고개를 들고 있다.
최근에는 스마트폰으로 인한 각종 증후군도 잇따라 생기고 있다. 타 증후군이 심리적인 것이거나 육체적인 현상인데 비해 스마트폰 증후군의 경우 정신적'육체적 증상을 동반한다는 것이 특징. 이른바 '증후군 종합세트'다. 그래서 위험성도 큰 편이다.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으면 불안해지는 증상은 물론 거북목 증후군, 목 디스크, 손목터널 증후군 등 스마트폰과 관련된 근골격계 질환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김경식 신경외과 전문의는 "술이나 담배, 컴퓨터 게임과 마찬가지로 스마트폰은 심리적인 중독을 일으킬 수 있다. 스마트폰이 없으면 불안하고 초조해지거나 학업과 업무 능력이 떨어지기도 한다. 또 장시간 잘못된 자세로 스마트폰을 사용하면 신체 여기저기서 문제가 발생한다"고 했다.
◆'증후군 증후군'?
증후군이 하도 많다보니 무엇이든 다 증후군이라고 부르고 싶어하는 증후군도 나오고 있다. 건강 염려증과 정신건강 염려증이 그 원인이다. 특히 최근에는 유전자 변형 음식에 대한 불안과 광우병, 구제역, 방사능에 대한 공포 등 건강과 관련된 각종 이슈 때문에 불필요한 걱정과 불안에 시달리는 이들이 많다. 이들 중에는 실제로 병이 없는데도 자신이 병에 걸렸다고 확신해 병원을 찾는 이들도 있다. 병원에서 '이상이 없다'는 얘기를 들어도 납득하지 못하고 여러 병원을 전전하게 되는 정신과적 질환을 앓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전문가들은 '특정 사안을 두고 동시에 강박증에 가까운 불안감을 보이거나 건강에 이상이 없는데도 큰 병에 걸린 게 아닌지 늘 불안한 생각이 든다'면 신체가 아니라 정신건강을 의심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양태 계명대 동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증후군이 하도 많다보니 무턱대고 증후군을 의심하는 환자들이 늘고 있다. 이들은 병원의 검사 결과, 아무런 이상이 없어도 자신의 의학적 지식에 비춰 오진이라고 여기거나 심각한 질병을 의사가 숨기고 있다는 망상 증상을 보이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또 "끊임없이 약을 복용하거나 병원을 찾는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생기는 건강에 대한 자신감 감소, 지나친 스트레스에 의한 정신적'신체적 피로, 현실로부터 도피하고 싶은 무의식적인 마음 등이 원인일 경우가 많다"고 했다.
문제는 '증후군 증후군'을 앓는 이들이 병이 없어도 두통, 가슴 두근거림, 소화장애, 배뇨장애 등의 증상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김 교수는 "증후군 증후군을 앓는 이들의 대부분이 건강 염려증과 비슷한 정신건강 염려증을 앓고 있다. 이들은 여러 병원을 전전하는 경우가 많다, 이 병원 저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을 모두 복용하기 때문에 약물 과다복용에 따른 부작용이 걱정된다"고 했다.
최창희기자 cchee@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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