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 '신문고'(申聞鼓)라는 제도가 있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듯이 '신문고'는 조선시대 백성들이 억울한 일을 당하면 대궐 밖에 설치한 북을 쳐서 임금님에게 이를 알리는 제도다. '신문고'는 백성들이 직접 억울함을 호소하고, 고발을 한다는 점에서 민의상달(民意上達)의 대표적인 상징으로 꼽힌다.
교과서에도 우리 조상들의 모범적인 민의 전달 제도로 실려 있다. 이런 이유로 정부가 운영하는 공식민원 포털 시스템의 이름도 바로 '국민신문고'.
하지만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신문고'는 사실 유명무실했다. 오직 종묘사직(宗廟社稷)에 관계된 억울함을 호소하거나 고발하는 자에 한해 접수, 해결해주었고, 하인이 주인을 고발하거나 백성이 관찰사나 수령을 고발하면 벌을 주었다.
'신문고'의 사용에 있어서도 주로 서울의 관리들에게만 한정되고, 취지와 달리 일반 상인(常人)과 노비, 지방의 백성들은 거의 이용하지 못했다고 한다. 민심수렴의 대명사인 신문고 제도가 사실은 특정 지역과 계급을 배려하는 것에 그쳤고, 정작 민초들은 신문고를 두드릴 수 없었던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사회는 과거에 비해 '신문고' 역할을 하는 장치와 도구가 다양해지고, 접근이 용이해졌다. 절차적 민주주의와 대중매체, 인터넷 등의 발달로 과거보다 다양한 방법으로 의사를 표시하고 민원(民願)을 제기할 방법이 많아진 것이다. 그렇다면 민주주의를 표방하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지금 이 시대는 '신문고'를 마음껏 두드릴 수 있을까.
지난여름,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청소년이 국정원 사건과 관련해 특별검사제도 도입 등을 요구하며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려 했으나 경찰에 제지당했다. 경찰은 학교, 주소 등 신원을 확인한 이후에도 몇 시간 동안이나 가로막으며 학교에 압박 전화를 하고, 학교에 어머니 전화번호를 물어서 어머니에게 협박 전화를 했다고 한다.
우리 헌법에는 집회결사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고, 1인 시위는 별다른 절차와 제재 없이 가장 손쉽게 자신들의 주장을 펼칠 수 있는 직접행동이다.
장소가 청와대라서 안 되는가? 아니면 청소년이라서 안 되는가? 북채를 드는 것조차 차별이 존재했던 조선시대의 신문고와 다를 바가 없다.
두드리긴 하는데 울리지 않는 경우도 있다. 단적으로 소통이라는 최소한의 절차도 없이 막무가내로 진행하고 있는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문제, 밀양 송전탑 건설문제를 봐도 그렇다. 강정마을에서는 수백 명이 구속, 체포되고, 밀양 농촌마을 노모들은 알몸시위를 하며 죽을 힘을 다해 쉴 새 없이 신문고를 두드렸다. 유력 정치인이 방문하고, 고위 공직자가 이야기를 듣겠다고 현장으로 왔지만 해법은 제시하지 않고 우는 아이 달래기에 지나지 않았다. 주민들의 생존권과 국민들의 목소리는 아랑곳없었다.
이뿐만 아니다. 수만 명의 시민들이 광장에 모여 국정원 댓글 공작의 진상을 밝히라는 목소리를 낸 지 수개월이 지났지만, 책임지는 사람 없이 묵묵부답이다. 들어야 할 이들이 애써 눈 감고, 귀를 닫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을 대변해야 할 언론도 광장 속 시민들의 목소리에는 유난히도 무심하다.
국정원 댓글 공작의 수사를 지휘하던 검찰총장이 압력에 의해 돌연 사퇴를 하는 이 시국에 검찰수사를 통한 진상규명이 가능할까? 참 답답한 세상이다. 딱히 해법이 없어 보인다.
한 청소년의 1인 시위가 제지당한 즈음 서울시 청사 앞에는 1인 시위자를 위한 파라솔이 설치되어 대조적이다. 이참에 청와대와 각 시'도청 앞에 1인 시위자를 위한 파라솔을 설치하는 건 어떨까? 날씨도 이제 쌀쌀해지니 난로까지 설치해주면 금상첨화겠다. 들어주지 않으면 더 크게 신문고를 두드리는 방법 외에는 수가 없다. 그래야 시끄러워 한 번 내다보기라도 할 것 아닌가.
박석준/함께하는 대구청년회 대표 adultbaby9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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