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 장군! 그대 장하니 그만 돌아가오
전쟁은 싸움을 해서 이길 수 있는 것만이 아니다. 심리전도 있고, 사전에 상대방의 기선을 제압하여 이길 수도 있다. 우리는 수많은 전쟁을 겪었다. 남(南)의 일본과 북(北)의 오랑캐들에게 침략을 당한 것만도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다. 그때마다 번번이 당했고, 전쟁터가 되기 일쑤였다. 을지문덕 장군이 전쟁을 하지 않고 수나라의 우중문 장군을 물러가게 했던 편지글 한 편과 시는 잔잔한 감동을 주는데 이를 아래와 같이 번안해 본다.
신기하고 묘한 계책 천지 이치 다했었고
전쟁에서 승리했던 그대의 공 다 아오니
우 장군! 만족함 알았다면 이제 그만 물러가오.
神策究天文 妙算窮地理
신책구천문 묘산궁지리
戰勝功旣高 知足願云止
전승공기고 지족원운지
【한자와 어구】
神策: 신기한 책략/ 究: 다하다/ 天文: 하늘의 이치/ 妙算: 오묘한 계책/ 窮: 다하다/ 地理: 땅의 이치/ 戰勝功: 전쟁에서 이긴 공/ 旣高: 이미 높다, 곧 이미 높은 줄 알고 있다/ 知足: 만족할 줄을 알았다면/ 願: (나는)~하기를 원한다/ 云止: 그만두다, 그치다.
'우 장군! 그대 장하니 그만 돌아가오'(于仲文'545~613'정치가 겸 장군)로 제목을 붙여 보낸 글 말미에 붙인 오언절구다. 작자 을지문덕(乙支文德)은 고구려 영양왕 23년(612년)에 수나라 군대를 살수에서 크게 무찔러 대승을 거두었던 장수로 잘 알려져 있다. 을지문덕은 '삼국사기'의 열전에 두 번씩이나 등장하는 인물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신기한 책략은 하늘의 이치를 다하였고/ 오묘한 계책은 땅의 이치를 다하였네/ 전쟁에서 이긴 공이 이미 높으니/ 만족함 알았다면 그만두길 바라오'라고 번역된다.
선현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문헌이다.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천 번에 가까운 침략을 받았다고 한다. 이렇게 보면 우리의 역사는 침략만 받은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지 모르겠다. 그때마다 관군과 의병이 일어나 나라를 지키면서 싸웠지만 파죽지세를 면치 못하고 당했던 경우가 많았다. 을지문덕 장군의 지혜와 기개는 어떤가.
시인의 짤막한 한 편의 절구 속에는 상대방을 칭찬하고, 상대방을 조롱하고, 때로는 상대방에게 굳건한 의기를 보이는 전술적인 면모를 발견한다. 바로 이 점이 전술이요, 기교요, 방책인 것이다. 넉넉한 자기 자만과 자신감 없이 어떻게 이만큼의 배짱을 부릴 수 있겠는가.
필자는 고려 때 거란이 침입해 왔을 때 말을 잘해 적장 소손녕과 담판하고 고려에 유리한 강화를 맺었으며, 이듬해에는 여진을 몰아냈던 서희 장군의 기개까지도 만난다. 모든 전쟁과 외교는 든든한 자만심과 촌철살인(寸鐵殺人)의 기개가 있어야 된다는 가르침으로 받아들여야겠다.
을지문덕은 고구려의 명장으로 6세기 중반에 태어나 7세기 초에 사망한 것으로 보이나 정확한 생몰년은 알려진 바가 없다. '을지'라는 성은 연장자를 의미한다고도 하고, 다른 한 편으로는 '을'만 성이고 '지'는 존대의 접미사로 보기도 한다. 선비족 계통의 성씨로 보아 을지문덕을 귀화인으로 보기도 한다.
이 시는 '증수장우중문시'(贈隋將于仲文詩)라고도 불리며, 우리나라에 현전하는 최고(最古)의 오언절구(五言絶句) 한시이다. 수나라의 역사를 기록한 '수서'(隋書)에 처음 등장하며, 김부식이 편찬한 '삼국사기'에도 수록되어 있다.
을지문덕 장군의 행방은 이 전쟁 이후 어느 문헌에도 나와 있지 않으나 대략 7세기 초에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하며 고구려 멸망 이후에도 뛰어난 명장으로 칭송받았다. 역사가 신채호는 그를 '한국의 위대한 명장'이라 하였으며, 고려 현종 시기에는 평양 근처에 사당이 세워졌고, 조선 숙종 또한 그에게 사당을 내렸다. 또한 서울의 을지로는 그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장희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시조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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