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에서) 2번(민주당)이 안 된 게 참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 사태 때문에 더 그렇다.
민주당에 대한 저평가는 그전부터 있었다. 승리가 점쳐지던 총선을 망치고 이어서 대선마저 내준 이후 보여준 민주통합당의 지리멸렬한 모습 때문이었다. 친노 대 비노, 주류 대 비주류로 나뉘어 당내 주도권 다툼으로 날이 샜다. 10년 만의 정권 탈환을 기대했던 2번 지지자들의 탄식은 더욱 컸다.
그건 약과였다. 이석기니 경기동부연합이니 RO니 하는 이야기가 들리고 나서는 지난 총선에서 종북 세력들의 원내 진출을 도왔다는 '원죄론'까지 겹치며 민주당은 궁지에 몰려 있다. 오랜만에 장외로 나갔지만 존재감도 없다. 국정원 개혁을 주장하지만 약발이 영 신통치 않다. 이석기 의원 등 통합진보당 지도부를 향해 '사이비 종교 집단 같다'는 지적마저 나오는 지경이니 민주당을 바라보는 시선이 고울 리가 없다.
역사에 만일이라는 가정은 없다고들 한다. 하지만 지난해 4월 총선에서 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야권이 원내 다수 세력이 되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를 가정해 보자. 북한이 '뿌리부터' 선(善)이라는 생각을 가진 이들이 지금보다 더 활개를 치지 않았을까? 또 더 많은 돈과 기회가 시대착오적인 불량 집단에 '당연한 일'처럼 제공되었을 것이다. 그 여세를 몰아 12월 대선에서 정권이라도 잡았다면? 종북 세력은 기고만장했을지도 모른다. 제2, 제3의 이석기가 출현했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 가슴을 쓸어내리게 된다.
이석기 의원 등이 국회에서 교두보를 확보한 데는 민주당이 무분별한 야권 연대를 한 것이 큰 역할을 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당시 민주당은 새누리당을 이기기 위해서는 누구와도 손을 잡겠다는 자세였다. 그러니 그 정치적 책임에서 민주당은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민주당은 그러나 아직 말이 없다. 이석기 의원 체포동의안을 통과시키는 것만으로 어물쩍 넘어가려는 것일까? 곤란하다. 책임이 있다면 사과를 해서라도 털어내고 가야 한다. 이 문제는 지금 벗어던지지 않으면 언제라도 민주당의 발목을 잡을 게 틀림없다. 새누리당과 보수 진영은 잊을 만하면 '종북의 추억'을 들춰낼 것이다. 남북 분단이라는 한반도의 특수 상황은 그런 상처를 잘 아물게 하지 않고 재발시킨다.
민주당은 지금의 틀을 부숴야 한다. 간판급 스타와 몇몇 핵심 인사들이 이석기 의원 사태의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을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생살을 도려내는 이런 아픔이 없이 부활은 힘들다. 10년을 잡고 있다가 내어준 정권을 10년 만에 되찾으려면 고치고 바꿀 게 어디 한두 가지일까? 수권 정당이 말로만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상대방의 잘못만 기다려서도 안 된다. 자기 능력 제고가 먼저다. 지금 이대로라면 4년 뒤 19대 대선에서도 2등이다. 아니면 그보다 더 아래다.
새누리당과의 싸움도 지금의 전력으로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 새누리당은 종북 척결을 내걸고 단독 국회 불사 통첩까지 하면서 민주당을 압박하고 있다. 야권과 진보 진영을 싸잡아 유사 집단이라고 몰아붙인다. 민주당은 그 대응논리로 겨우 '민주 대 반민주'라는 해묵은 레퍼토리를 들고나왔다. 새누리당의 뿌리가 독재라는 주장도 한다. 하지만 식상하다. 베트남에서 패션쇼에 직접 참석해 한복의 아름다움을 과시한 대통령의 자태에 가려 잘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다. 이런 식이라면 결과는 뻔하다.
정답을 찾기 어려울 땐 정공법이 최선이다. 한때의 정치적 판단이 잘못됐음을 인정하고 종북 세력들과는 분명한 선을 그으면 된다. 새누리당도 청와대도 민주당의 정공법에는 대꾸를 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정치란 고정불변이 아니다. 지금의 절망 속에서 희망의 싹은 트게 마련이다. 민주당이라고 언제까지나 비세로 일관하라는 법은 없다. 그런 믿음의 밑바탕에는 18대 대선에서 2번을 찍은 48%와 19대 총선에서 야권 후보를 지지한 48.5%의 국민들이 있다. 그중 일부가 흔들리고 지지를 철회한다고 하지만 그래도 대다수는 민주당이 제자리를 찾아 목소리를 내기를 묵묵히 기다리고 있다.
또 새누리당의 일방적인 독주에 박수를 치는 국민들이 그리 많은 것도 아니다. 민주당의 분발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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