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저 언덕 위/ 들소들 노닐고 노루 사슴들 뛰노는 곳/ 걱정 근심 없고 구름 한 점 없는/ 그곳에 나의 집 지어 주/
언덕 위의 집/ 노루 사슴들 뛰노는 곳/ 걱정 근심 없고 구름 한 점 없는/ 그곳에 나의 집 지어 주//
밤이면 별이 총총 반짝이는/ 찬란한 하늘 아래/ 나 그 몇 번이나 생각했던가/ 저 영광 못 따르리라고.'
이 곡은 미국 카우보이들의 노래다. 미국 민요는 대체로 찬송가 가락을 연상시킨다. 청교도들이 세운 나라의 민요이기 때문일까. 한때 로버트 쇼 합창단과 로저 와그너 합창단이 부르는 언덕 위의 집을 성가처럼 경건한 마음으로 따라 불렀던 날들이 있다. 성가처럼 느낀 것은 이 노래가 단지 찬송가풍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 노래에는 알게 모르게 유토피아적 이상이 개입되어 있기 때문이다. 유토피아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상상의 장소이다. 이곳은 늙지도 병들지도 않는 곳이며 걱정이 없는 영원한 봄날이 이어진다.
개화기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서양식 근대교육을 받은 많은 이들이 '언덕 위의 집'을 배우고 불렀으며 이 노래를 통해 근대적 이상향을 꿈꾸었다. 가사에 나타나듯이 집은 언덕 아래가 아니라 모든 것을 관망할 수 있는 높은 곳,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다. 좌절과 치욕의 시대, 언덕 위의 집은 미화되고 다듬어진 완전한 세계였다. 언덕 위의 집은 막연하지만 신식 교육을 받은 이들의 정체성을 실현해 주는 한 지점이 되었으며 근대식 교육을 받았지만 여전히 열악했던 그들의 삶을 지탱시켜주는 지주로서의 역할을 하였다.
이 곡에는 흔해 빠진 비애나 눈물의 정서가 담겨 있지 않다. 이 노래에는 가족 구성원이 만들어내는 안정감과 절대자에 대한 경외가 바탕에 깔려 있다. 따라서 문화의 전 영역을 통제하고 건전가요를 보급하던 1960, 70년대 독재정권의 의도에도 부응하는 측면이 컸다. 하지만 동시에 독재타도를 원하던 자들에게는 절망적 현실을 이겨내기 위해 의식화된 유토피아로서의 역할을 하였다고 볼 수 있다. 언덕 위의 집은 70년대 국민가요라 할 수 있는 남진의 노래, '저 푸른 초원 위에'와 맥락을 같이한다. 이곳은 걱정근심 없고 행복한 곳이며, 이 행복을 누가 앗아 갈 자 없는 평화로운 곳이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일수록 유토피아는 미화되어 새로운 역사 가능성에 대한 기대가 되었다.
언덕 위의 집은 1980년대까지도 음악 교과서에 실려 있었다. 절대 궁핍과 결핍의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에게 언덕 위의 집은 단지 배불리 먹고사는 문제를 벗어난 보다 항구적이며 초월적인 이데아의 세계였다. 이것은 당대의 사회적 긴장과 고통으로부터 유리된 공간이며 대중의 강렬한 욕망이 어떤 상징의 차원으로 나타난 것이라 할 수 있다.
언덕 위의 집은 외국 민요이지만 결핍의 시대와 결핍의 세대가 공감하고 받아들인 공통의 산물이었다. 이것은 집단적 상징으로 의미가 확대되었고 가난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현실을 벗어날 수 있는 하나의 열린 가능성이 되어왔다.
한 시대와 한 세대에만 통하는 노래들이 있다. 지금의 젊은 세대에게는 언덕 위의 집과 같은 류의 노래가 통하지 않는다. 그들은 매우 현실적이어서 이런 류의 노래를 부르지 않고 이런 노래들을 통해 이상향을 꿈꾸는 것 같지도 않다. 그렇다면 그들이 꾸는 꿈은 어떤 것일까. 인간은 현실에 없는 것들을 추구해 왔다. 이제는 풍경이 좋은 곳마다 노래가 들려주는 것 이상으로 멋지고 행복해 보이는 전원주택들이 빽빽이 들어서 있다. 언덕 위의 집은 어느새 유효기간이 서서히 끝나가는 것 같아 보인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아름답고 영원한 세계의 모습으로 남아 있으리라.
언덕 위의 집은 외국 민요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의 정서를 건드리는 측면이 컸다. 그래서 마치 우리의 노래처럼 편하게 느껴졌다. 이것은 민요라는 장르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근본적이고 보편적인 가치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또한 음악이야말로 언어와 종교, 국경을 초월하는 막대한 힘을 지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서영처 시인'영남대학교 교책객원교수 munji6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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