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자기 PR

입력 2013-08-16 11:33:35

중국 동한(東漢) 때 한강(韓康)이라는 은자(隱者)가 있었다. 평생 명산을 돌아다니며 약초를 캐다 팔았는데 30여 년 동안이나 같은 값을 받았다. 어느 날, 어떤 여자에게 약초를 팔면서 아무리 깎아 달라고 해도 응하지 않고 같은 값을 불렀다. 그러자 그 여자는 "당신이 한백휴나 되오? 값을 조금도 안 깎아주게?"라고 핀잔했다. 백휴는 한강의 자(字)이다. 한강은 "나는 이름이 알려지는 것을 피하려 했는데, 대단치 않은 여자까지도 내가 있는 줄 알고 있으니 약초를 팔아 무엇하리오?"라고 탄식하며 산으로 들어가 숨었다. 그 뒤, 왕이 몇 번이나 수레를 보내 그를 불렀지만 끝내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서진(西晉) 때 학자인 황보밀이 91명의 기인, 은자의 이야기를 적은 고사전(高士傳)에 나온다. 요즘의 눈으로 보면 시대착오적이고, 앞뒤가 꽉 막힌 인사들의 이야기만 골라 놓은 책이다. 요 임금이 임금 자리를 물려주려 했던 허유(許由)나 스스로 빛남을 숨기지 않아 요 임금으로부터 탐욕스러운 말을 들었다며 허유와 절교를 선언한 소부(巢父), 성삼문의 시조 절의가(節義歌)에 나오는 백이·숙제의 이야기도 실려 있다.

선거철만 되면 일찍부터 얼굴 알리기에 안간힘인 후보들이 많다. 당장 경북의 포항 남'울릉 국회의원 재선거가 10월 30일이다. 10월 9일까지인 예비후보 등록 공고가 난 지 일주일 만에 6명의 후보가 등록했다. 지역과 나라 발전의 무거운 짐을 지려는 인재가 적지 않음에 고마울 뿐이다. 한편으로는 자신 있게 인물로 승부를 겨루지 못하고, 새누리당의 공천을 받으려고 동분서주하는 인사도 많다고 하니 씁쓸하기도 하다.

고사전에 나타난 인물들은 하나같이 자신을 스스로 숨겨 번잡한 세상 일을 피하려 했지만, 낭중지추(囊中之錐)처럼 인격과 학식이 알려져 세상이 칭송했다. 공자는 논어의 첫 구절에 '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다른 사람이 알아주지 않아도 화를 내지 않는다면, 어찌 군자가 아니겠는가)라 했다. 그러나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 SNS까지 동원해 자화자찬해서라도 자신을 알려야 하는 것이 요즘 세상이다. 그래도 왕이 되어달라는 소리를 듣고 더럽다며 귀를 씻고, 어떤 자리로 유혹해도 꿋꿋하게 제 갈 길만 가는 꽉 막힌 인사가 어딘가에는 있음을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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