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교사 출신의 스위스 작가 페터 빅셀은 인간 소외를 기발한 착상으로 유머러스하게 그린 단편집 '책상은 책상이다'의 지은이다. '어른을 위한 동화'라는 부제로 시인 김광규 씨가 1978년에 번역해 국내에 처음 소개한 뒤, 오랫동안 사랑을 받았다. 이 단편집은 3부로 나눠 빅셀의 여러 작품을 모은 것으로 '지구는 둥글다' '기억력이 좋은 남자' '요도크 아저씨' 등 24편의 작품이 실려 있다.
책 제목으로 선택된 작품 '책상은 책상이다'는 세상과 단절한 한 늙은 남자를 이야기한다.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을 정도로 평범한 이 남자는 언제나 똑같은 세상에 싫증이 났다. 그래서 모든 것을 다르게 부르기로 했다. 침대를 사진이라고 부르고, 책상을 양탄자, 괘종시계를 사진첩이라고 불렀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침대에서 일어났을 때 책상 위의 괘종시계가 9시를 알렸다'라고 하는 것을 그는 '사진에서 일어났을 때 양탄자 위의 사진첩이 9시를 알렸다'라고 했다.
처음에는 명사에서 시작해 동사를 바꿨고, 나중에는 모든 것을 자신만이 아는 언어로 불렀다. 새 언어에 점점 익숙해져 갈수록 다른 사람과의 대화는 불가능해졌다. 도무지 서로 알아들을 수가 없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는 말을 하지 않았고, 자기 자신하고만 이야기하며 살았다. 지은이는 이 우화를 슬픈 이야기라고 하면서 그가 다른 사람 말을 이해할 수 없는 것보다 다른 사람이 그를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훨씬 나빴다고 했다.
인간의 소외 문제를 다루고자 했던 빅셀에게는 미안하지만, 요즘 일본의 행태를 보면, 이 단편 속의 늙은 주인공과 비슷하다. 온 세계가 비난하는데도 전범을 치켜세우고, 위안부 강제 동원 등 전쟁 때 벌인 명백한 범죄 사실을 부인한다. 최근에는 군국주의를 상징하는 욱일승천기 사용 문제를 일본 정부가 공식화할 것이라는 보도도 있었다. 이는 독일 나치의 하켄크로이츠와 함께 전쟁과 침략의 동의어인 욱일승천기를 국기라고 부르겠다는 것이다.
이웃 국가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자신만의 생각으로 세상을 보기로 작심한 데 대한 결과는 뻔하다. 소설 속의 그 남자처럼 자신만의 세계 안에서 고립된 채로 쓸쓸하게 살아가야 할 것이다. 언젠가는 후회와 반성을 한다며 용서를 빌겠지만, 한때의 극우 분위기에 휩쓸려 벌이는 이 작태 또한 부끄러운 역사로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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