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재의 은퇴일기] 아름다운 상처

입력 2013-08-10 08:00:00

얼마 전 영화 한 편을 봤습니다. 많은 극장에서 상영하지 않는 다양성 영화인 '마지막 4중주'였지요. 현악 4중주 단원의 갈등과 화해, 그리고 새로운 시작을 그린 영화였습니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데도 모두들 자리에서 꿈쩍 하지 않았지요. 베토벤의 현악 4중주 14번 연주를 끝까지 듣고 싶어서였겠지만 영화가 주는 감동도 한몫했을 것입니다.

이 영화는 25년 동안 최고의 현악 4중주로 활동하던 팀이, 단원 한 명의 병으로 인해 겪게 되는 갈등과 화합의 이야기입니다. 갑작스러운 균열은 그들로 하여금 그동안 억눌러 왔던 불만을 폭발시켜 팀을 해체 위기까지 내몹니다. 이 과정에서 단원 모두는 깊은 상처를 받고, 결국에는 그 아픔으로 다시 시작한다는 내용입니다.

장황하게 영화를 소개한 것은 상처를 말하고 싶어서입니다. 어느 시인의 시를 굳이 빌리지 않더라도 상처 없는 영혼은 없을 듯합니다. 우리 모두는 저마다의 상처를 가슴에 안고 살아가는 것이겠지요.

영화를 보면서 '마음의 상처가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오히려 더 크고 더 깊게 살아가는 '힘'이 될 수 있겠다 싶었지요. 상처는 세상 이치를 받아들이게 하는 용기와 지혜를 주는 마력까지 있어 보였습니다.

수술을 해 본 사람들은 압니다. 수술대에 한번 눕고 나면 삶이 달라 보이기 시작한다는 것을요. 일렁이는 바람도, 반짝이는 잎도, 하늘을 떠다니는 구름마저도 사랑스럽습니다. 하물며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이야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몸의 상처가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는 눈을 열어준 것이지요. 마음의 상처는 그보다 더할 것입니다.

앞서 이야기한 현악 4중주단원들은 와해의 위기를 겪으면서 그들 각자 하나의 아픔을 품게 됩니다. 그로 인해 그들은 숙성되고, 마침내 그 상처는 서로를 보듬고 함께 바라보게 합니다. 상처의 힘이지요.

정호승 시인은 풀잎에도 상처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상처 많은 꽃잎이 가장 향기롭다고 했습니다. 세월을 산다는 것은 어쩌면 가슴에 아픔을 꽃잎처럼 붙여나가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피할 수 없는 상처라면 그로 인해 더 그윽해지고 싶습니다. 향기롭고 싶습니다.

김순재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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