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처의 인문학] 바다의 교향시

입력 2013-08-03 07:31:22

서영처 영남대 교책강의교수
'바다의 교향시'가 수록돼 있는 김정구의 앨범 표지.
서영처 영남대 교책강의교수

초'중'고등학교가 방학을 시작하고 본격적인 휴가철이 시작되었다. 몰려드는 인파로 전국의 산과 계곡, 바다는 인산인해를 이루고 도로는 차량의 행렬에 몸살을 앓고 있다. '왜 사서 고생하며 힘든 휴가를 떠날까'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사실 떠난다는 것은 자신의 사회적 존재를 잠시 망각하는 일이다. 그래서 휴가지에서는 일탈과 그에 따른 여러 가지 소소한 사건들이 일어나기도 한다. 하지만 격무와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팍팍한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도시를 떠나 일에서 해방되는 시간은 그 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 필요한 시간임에 틀림없는 것 같다.

한때 여름마다 강변가요제, 해변가요제가 대단한 인기를 누린 적이 있었다. 피서철이면 키보이스의 '해변으로 가요', 비치보이스의 'Surfin U.S.A' 같은 노래에서부터 조용필의 '여행을 떠나요', f(x)의 '핫 썸머' 같은 노래들이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을 더욱 부추긴다. 노래를 듣다 보면 '그래 이번 여름엔 가자!' 결심을 해 보기도 하지만 아직 여름휴가를 제대로 즐겨 본 적이 거의 없는 것 같다.

일제강점기에도 엄연히 바캉스라는 것이 있었다. 바캉스는 주로 구미와 일본에 유학을 하고 온 식자층과 하이칼라 젊은이들이 추구하던 서구풍의 부르주아문화였다. 어느 정도 가식과 허영이 가미된 이러한 양풍의 문화는 급속하게 확산되었다. 이 시대에는 휴가라는 것 자체가 이미 모던하고 새로운 문화이기도 했다. 이것은 근대화의 경쾌한 체험이었다.

'어서 가자 가자 바다로 가자/ 출렁출렁 물결치는 명사십리 바닷가/ 안타까운 젊은 날의 로맨스를 찾아서/ 헤이 어서 어서 어서 가자 어서 가/ 젊은 피가 출렁대는 저 바다는 부른다/ 저 바다는 부른다// 어서 가자 가자 바다로 가자 /뭉게뭉게 구름 이는 푸른 바다 품속에/ 산호 수풀 우거진 곳 로맨스를 찾아서/ 헤이 어서 어서 어서 가자 어서 가/ 젊은 꿈이 둥실대는 저 바다는 부른다/ 저 바다는 부른다.'

당시 최고의 피서지는 함경도 원산이었다. 원산의 명사십리는 고운 모래가 십리나 펼쳐지고 해송과 해당화가 어우러진 조선 최고의 해수욕장이었다. 조선의 관광지 개발에 적극적이던 총독부 산하 철도국은 명승지마다 철도호텔을 짓고 임시열차를 동원해 손님들을 날랐다. 특히 원산은 해수욕장뿐만 아니라 '원산 골프장' '신풍리 스키장'까지 갖춘 동양 굴지의 휴양지였다. 또한 원산은 북한에서 가장 큰 항구였으며 일제의 해군기지가 있던 곳이기도 했다. 최근엔 김정은의 지시에 따라 원산-금강산 지역을 대규모 국제관광특구로 개발하기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 뉴스가 보도되고 있다.

조명암이 작사하고 김정구가 부른 이 노래는 1938년 발매되자 히트를 했다. '바다의 교향시'는 제목이나 가사 내용이 당시로는 매우 세련되고 신선한 것이었다. 전혀 새롭고 이질적인 문화와 이미지들의 제시는 대중에게 막연한 희망을 심어주며 조선의 식민지적 조건을 잠시나마 잊게 하는 환각효과까지 불러일으켰다. 1938년이면 일제 말 전시체제하에 반강제적인 지원병제도가 실시되고 동원과 수탈이 극심하던 시기였지만, 그러한 가운데서도 일부 지식인과 젊은이들은 전환기가 만들어낸 모순적인 산물들을 주저 없이 받아들이고 즐겼다.

'메밀꽃 필 무렵'의 작가 이효석은 1935년 작 '계절'에서 해수욕장 풍경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파들파들한 여인의 육체, 그것은 탐나는 과실이요, 찬란한 해수욕복, 그것은 무지개의 행렬이다. 사치한 파라솔 밑에는 하얀 살결의 파도가 아깝게 피어있다.' 해수욕장은 외양적이고 모조적인 것을 대표한다는 점에서 '부르주아 유흥장' '에로100% 환락가' 등의 신랄한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일제는 이러한 부르주아 문화를 지식인들과 지배집단에 이식시켜 문화를 통한 고도의 세련된 우민화 정책을 지속할 수 있었다.

불경기와 폭염이 계속되고 있다. 한'일 축구전 이후 일본이 보여주는 뻔뻔스러운 태도가 가뜩이나 더운 날씨를 더 덥게 만든다. 아무튼 복잡한 생각은 일단 접고 계곡이든 바다든 무작정 떠나자. 태양의 계절을 마음껏 즐겨보자.

서영처 영남대 교책강의교수 munji64@hanmail.net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