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갑을 전쟁

입력 2013-08-02 11:05:58

오래전부터 시작된 갑과 을의 논란이 최근 들어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어느 분야에서나 마찬가지겠지만 갑은 힘을 가진 자이고, 을은 힘을 가지지 못한 자로 혹은 갑은 주류이고 을은 비주류라고 보는 것에는 모두가 동의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떤 분야, 어떤 상황이냐에 따라 갑과 을의 형태는 조금씩 변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주류는 비주류보다 숫자가 많은 다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숫자가 적은 쪽이 주류가 되고 갑이 될 수도 있다. 이는 비록 숫자는 적어도 상대적으로 힘이 세기 때문일 것이다. 문화예술계도 기업의 관계나 자본시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문화예술계에서도 갑과 을의 문제는 큰 화젯거리임에 분명하다.

필자 또한 당연히 갑과 을의 관계를 경험해 보았으며, 지금도 갑과 을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똑같은 상황을 두고 갑이 되기도 하고, 을이 되기도 했다는 점이다. 어느 단체의 원고 청탁을 받은 필자는 을의 입장에서 계약서를 쓰고 기간에 맞춰 대본을 제공하고 원고료를 받았다. 하지만 해가 바뀌고 필자의 대본으로 다시 공연을 하려는 그 단체와 저작권 계약을 하게 되었을 때는 필자가 갑이 되었다. 순식간에 갑과 을이 뒤바뀌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이런 상황을 잘 알기에 필자나 그 단체는 계약 과정 중에 누구도 갑질이라고 부를 만한 갑의 횡포를 보여주지 않았고, 눈에 보이는 갑을 전쟁도 없었다. 물론 자신의 이익을 조금이라도 더 가져가기 위한 협상은 있었다.

대부분 갑과 을의 상황은 만만하지 않다. 협상을 통해 원만한 계약이 성립된 상태에서도, 갑과 을이 확정되면 갑을 관계는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배하는 동물의 왕국처럼 변한다. 숫자는 적어도 힘이 센 짐승이 자신보다 힘이 약한 짐승을 먹이로 삼고, 힘이 약한 짐승은 자신보다 더 힘이 약한 짐승을 먹이로 삼는다. 그리고 연약한 초식동물은 별다른 저항도 없이 자신의 온몸을 희생하는 풀들을 먹이 삼아 생명을 유지한다. 가장 숫자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이름 없는 풀들은 온몸을 그대로 내맡길 수밖에 없다. 이것이 대다수 을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을의 희생 없이는 갑이 존재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을을 지나치게 희생시켜 존립 자체를 위태롭게 하면 결국 갑도 살아남을 수 없다. 갑의 횡포보다 더 무서운 것은 을의 집단 반발이고, 그로 인해 갑과 을은 얼마든지 뒤바뀔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결국 강한 힘으로 억누르고 조종하는 것이 갑이고, 그 힘에 시달리는 것이 을이 아니라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 될 관계가 갑과 을이다. 사실 인류, 문화, 예술의 역사는 모두 갑과 을의 관계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계약서에서 갑과 을의 명칭을 없앤다고 사라질 갑과 을의 문제는 결코 아니다. 말이 바뀔 뿐이지 의미가 바뀌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다. 물론 원론적인 해결 방법은 얼마든지 제시할 수 있다. 서로 입장을 바꿔보자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결코 그렇게 단순하게 혹은 교과서적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믿을 수 있는 것은 인간성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갑과 을의 관계를 바로잡을 법이나 제도의 개선일 수밖에 없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아무리 뛰어난 갑이라고 한들 어느 상황에서는 을이 될 수밖에 없고, 아무리 약한 을이라고 해도 어느 상황에서는 갑이 되기도 한다. 상황에 따라 갑과 을은 얼마든지 뒤바뀔 수 있고, 어느 누구나 갑과 을이라는 양자를 모두 경험할 수밖에 없는 세상을 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을 못하듯이 행동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착하게 살자'라는 구호를 외칠 수도 있겠지만, 그런 말들은 그저 헛웃음만 나올 뿐이다.

갑과 을이 모두 수용할 수 있고 갑과 을의 권리를 모두 보장할 수 있는 법적'제도적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만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이를 통해 갑을 전쟁을 종식시키는 그날이 빨리 오기를 바랄 뿐이다. 다만, 문화예술의 갑을 전쟁은 계속되어야 한다. 돈이나 운영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실험과 예술성을 둘러싼 주류와 비주류의 충돌, 즉 갑과 을의 전쟁은 곧 새로운 예술의 탄생과 발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안희철/극작가 art-pl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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