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센'(零戰)은 태평양전쟁 때 일본 해군의 주력 전투기다. 정식 명칭은 '미쓰비시 A6M 영식(零式) 함상 전투기'로 호리코시 지로(堀越二郞)가 개발 책임을 맡았다. 일본인은 제로센을 미군 조종사를 벌벌 떨게 한 세계 최고의 '명품'으로 기억하지만 반쪽만의 기억이다. 제로센은 우수한 선회 능력과 속도로 전쟁 초기에는 미군기에 우위를 점했지만 실전 투입 후 불과 2년 만에 '원 샷 라이터'(One Shoot Lighter)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박살이 난다.
그 이유는 '긴 항속거리'와 '빠른 속도'를 모두 갖추려 한 과욕 때문이었다. 제로센의 엔진 출력은 매우 낮았다. 이런 엔진으로 긴 항속거리와 빠른 속도를 겸비하려면 기체를 경량화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기체 골조에는 구멍이 숭숭 났고 주익(主翼)의 금속판은 얇을 대로 얇아졌으며 조종사를 보호하는 장갑판은 '생략'됐다. 이런 약점은 제로센 1대가 알류샨 열도에 온전한 상태로 불시착하면서 미군에게 간파당한다.
이후 제로센은 미군기의 손쉬운 먹잇감이 됐다. 연료 탱크에 장갑판이 없어 단 한 발만 명중돼도 조종사는 바비큐가 됐다. 기체가 약해 빠른 속도로 급강하할 수도 없었다. 이런 약점을 이용한 미군 조종사들의 '급상승 후 급강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그 결정판은 1944년 6월 19일 마리아나 제도 해역에서 벌어진 공중전, 이른바 '마리아나의 칠면조 사냥'이다. 이 전투에서 일본 항공기 220대가 격추됐다. 그 대부분이 제로센이었다. 반면 격추된 미군기는 29대에 불과했다. 이로써 일본의 항공력은 괴멸됐고 이후 제로센은 '가미카제'의 자살 공격 소모품으로 전락한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의 신작 '바람 불다'(風立ちぬ)가 국내 네티즌의 비판에 휩싸이고 있다. 그 골자는 호리코시 지로가 전쟁의 고난과 역경을 딛고 제로센을 탄생시켰다는 이야기 전개 수법이 일본의 전쟁 책임을 희석하는 무책임한 '낭만화'라는 것이다. 타당한 지적이다. 제로센에 대한 시각도 문제다. 고난과 역경을 딛고 탄생시켰다는 메시지는 제로센을 대단한 전투기로 미화하지만 사실(史實)은 그렇지 않다. 침략의 도구였고, 조종석에 장갑판을 대지 않은 데서 드러나듯 인명 경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날아다니는 관(棺)'이었다. 제로센의 무엇이 자랑스러운지 모르겠다.
댓글 많은 뉴스
[단독] 백종원 갑질 비판하던 저격수의 갑질…허위 보도하고 나 몰라라
'곳간 지기' 했던 추경호 "李대통령 배드뱅크 정책 21가지 문제점 있어"
채무탕감 대상 중 2천명이 외국인…채무액은 182억원 달해
[정경훈 칼럼] 집권 세력의 오만과 국민 조롱, 국민이 그렇게 만들었다
李정부, TK 출신 4인방 요직 발탁…지역 현안 해결 기대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