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률의 줌인] 조의석·김병서 감독 '감시자들'

입력 2013-07-04 07:36:09

넘치는 박진감 영화광 세대의 게임같은 영화

영화는 점점 게임을 닮아간다. 반대로 게임은 점점 영화를 닮아간다. 이 말은 영화와 게임이 각 매체의 특징을 밀접하게 교접하고 있다는 말이다. 영화는 점점 컷이 많아지고, 그러면서 영화적 속도감이 가파르게 늘어가면서 게임처럼 순간순간 반응하게 만든다. 반대로 게임은 영화처럼 캐릭터와 이야기를 지닌 채 매 상황이 전개된다. 그래서 어느 순간, 영화와 게임은 만나게 된다. 영화와 게임이 자주 교류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조의석, 김병서 감독이 공동 연출한 '감시자들'을 보면서 든 처음 생각은 마치 영화가 한 편의 게임 같다는 것이었다. 영화는 경찰 내 특수 조직인 감시반을 소재로 한다. 이들은 범죄 대상에 대해 감시만 한다. 말 그대로 감시자들인 것이다. 이 조직에는 전문가인 황 반장(설경구)이 있는데, 탁월한 기억력을 지닌 신참 하윤주(한효주)가 들어온다. 팀이 꾸려지니 사건도 발생한다. 3분 만에 한 치의 실수도 없이 은행을 털어간다. 그것도 고위층의 어음과 채권만 골라가 언론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이런 귀신 같은 솜씨로 사건이 재발한다. 이제 감시자들과 도망자의 게임이 시작된다. 물론 감시자가 도망자를 잡으면서 영화는 게임처럼 끝이 난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감시자들이 주로 하는 일이 CCTV를 통해 사람들의 모습을 감시한다는 점이다. 범죄자로 추적되는 인물이 등장하면 감시자들의 시선과 여러 위치에 있는 CCTV를 통해 범죄자로 추정되는 인물의 행동을 모조리 감시한다. 그것을 본부의 상황실에서 종합적으로 관조한다. 인물이 어디로 이동하느냐에 따라 감시자와 카메라의 동선과 사용이 달라진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범죄를 설계하는 제임스(정우성)도 신의 시점인 빌딩 위에서 상황을 한눈에 파악하면서 범죄를 설계하고 지휘한다. '범죄의 설계자(실행자)'와 '감시의 설계자(실행자)'가 한 눈에 상황을 파악하며 경쟁하듯이 사건을 끌고 간다. 이러니 영화는 점점 더 게임처럼 작동하게 된다.

이 게임 같은 영화에서 재밌는 규칙이 있다. 도망자나 추적자가 절대 뛰지 않고 차분히 걸어갈 것, 그리고 정체가 드러나면 게임에서 아웃된다는 것, 그 자리에 새로운 존재가 들어와 다시 게임을 시작하는 것. 뛰지 않고 걸어가기 때문에 영화는 속도감이 나지 않을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영화의 무대는 테헤란로, 청계천, 낙원상가 등 서울의 유명 장소이다. 장소를 옮길 때마다 그 상황의 게임이 새로 시작되니, 박진감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범죄의 설계자는 치밀한 두뇌와 전문적인 싸움 실력을 갖춘 사람이다.

젊은 두 감독은 인물들의 동선을 치밀하게 그려가면서 매우 힘 있는 영화를 만들어냈다. 젊은 두 감독의 패기가 스크린 속에 오롯이 느껴진다. 빠른 편집과 힘 있는 카메라, 역동적인 상황과 액션이 결합돼 한곳을 향해 강하게 흘러간다. 무엇보다 치밀하게 다룬 동선이 빛을 발한다. 인구 통제하면서 영화 촬영하기 어렵기로 소문난 서울 시내에서 그렇게 촬영했다는 점에서 놀랍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영화를 보면서 든 생각은 기존의 영화를 많이 참조한 '영화광 세대의 영화'라는 것이다. 사실 한국에서 영화광 세대가 없는 것은 아니다. 박찬욱이나 김지운, 류승완도 영화광 세대이지만, '감시자들'의 감독 조의석, 김병서와는 좀 다르다. 박찬욱이나 류승완, 김지운은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의 틀을 미리 정해놓고 그 틀 속에서 울림을 만들어낸다면, 조의석, 김병서는 자신들이 좋아하는 영화가 아니라 자신들이 좋아하는 분위기를 자신들이 만든 영화 속에 복원해 낸다.

가령, '감시자들'은 두기봉이 제작하고 유내해가 감독한 홍콩 영화 '천공의 눈'을 리메이크했지만, 말 그대로 리메이크했을 뿐이다. 홍콩 영화를 한국의 상황에 맞게 많이 각색했다. 게다가 영화의 흐름을 위해 두 감독은 '본 시리즈'를 많이 차용하면서 쫓고 쫓기는 추격전의 묘미를 백분 살려냈다. 그래서 영화는 어느 순간, 그것이 게임을 빌려온 것 같기도 하고, 게임처럼 박진감 넘치는 영화를 빌려온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영화를 볼 때는 쾌감이 있지만 보고 나면 그리 유쾌하지는 않다. 기존 영화에서 차용한 장면들을 빠르게 자신의 영화 상황 속에 녹여내면서 멋진 스타일로 재창조하지만, 단지 스타일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계속해서 빠르게 흘러가지만 그 엄청난 속도를 따라가면 결국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결론과 손쉽게 만나게 된다. 그래서 관객이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 범인이 이미 정해졌기 때문에 두뇌 게임을 할 필요도 없다. 결정적으로 인간적인 냄새가 나지 않는다. 하윤주가 경찰이 된 것도 단지 경찰대를 나왔기 때문에 경찰이 되었고, 황 반장도 인간적인 고뇌가 별로 없다. 범죄의 설계자이자 도망자인 제임스 역시 비슷하다. '감시자들'은 잘 만든 영화임에 분명하지만, 극장을 나서면 좀 답답해진다.

강성률 영화평론가, 광운대 교수 rosebud7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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