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읽기] 위대한 언변가 둘, 다른 시대 속 같은 운명

입력 2013-06-22 07:30:57

두 정치연설가의 생애/ 플루타르코스 지음/김헌 주해/한길사 펴냄

'데모스테네스와 키케로, 민주와 공화를 웅변하다.'

이 책의 저자인 플루타르코스는 두 정치연설가에 대해 "신들께선 데모스테네스와 키케로를 처음엔 똑같이 만들어놓고, 그들의 본성 속에 많은 유사점들 예를 들면, 정치적 활동에서의 명예와 자유를 사랑하는 마음을, 위험과 전쟁에 맞설 때 과감하지 못한 태도 등을 집어넣는 한편, 거기에 덧붙여 운명에 있어서도 많은 유사점들을 같이 섞어 넣은 것 같아 보입니다"고 말했다.

이 책은 아테네와 로마의 두 위대한 정치연설가인 데모스테네스(BC 384∼322년)와 키케로(BC 106∼43년)의 생애를 다룬 전기 작품이다. 김헌 서양고전학자가 치밀하게 분석해 번역한 이 저서는 플루타르코스의 대표작인 '생애의 비교' 중 일부로 특정 두 인물의 비교에 초점에 맞추고 있다.

데모스테네스와 키케로는 각각 기원전 4세기와 1세기에 그리스와 로마라는 서로 다른 공간에서 살았지만, 두 사람의 삶에는 유사한 점이 많았다. 둘은 왕과 참주들에 대항해 시민들의 자유, 민주(民主)와 공화(共和)의 가치를 위해 싸웠다.

아테네의 정치연설가 데모스테네스는 필립포스와 알렉산드로스의 침략에 저항해 시민들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는데 일생을 바쳤다. 그는 아테네를 점령한 알렉산드로스의 후계자 안티파르로스에게 추격당했고, 그의 하수인에게 체포되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제국주의와 타협을 거부하고, 펜에 숨겨두었던 독약을 스스로 삼킨 것. 데모스테네스의 죽음은 한 개인의 파멸이라기보다는 그가 지키려고 했던 민주주의의 몰락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그가 숨을 거두는 순간 아테네는 마케도니아의 거대한 제국에 편입되었고, 그 이후 서구 유럽 땅에서 근대적인 시민혁명이 일어나기까지 거의 2천 년의 세월이 걸렸다.

로마 최고의 연설가 키케로는 공화정의 이념을 끝까지 사수한 사람이었다. 그는 카이사르와 안토니우스 등 삼두정치 체제를 이끌던 인물들의 가슴속에 타오르고 있던 황제의 야망을 꿰뚫어 보고 이에 맞서 싸웠다. 하지만 키케로의 최후도 비극이었다. 최대 정적으로 꼽히던 안토니우스의 앙심에 의해 희생된 것. 안토니우스는 키케로를 죽이라고 명령했고, 그의 머리와 오른손을 잘라 로마 광장의 연단에 전시해두라고 했다. 이 처참한 광경은 키케로의 죽음이 아니라 로마 공화정의 몰락을 상징하는 참사였다. 그의 죽음 이후 국가와 권력은 인민에게 속하는 공공의 것이 되었고, 특정 집단이나 계층, 지도자들이 사유물로 삼을 수 없는 것이라는 메시지가 인류 정치사에 남았다. 308쪽, 2만2천원.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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