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속 산골 '두봉마을'에 무슨 일이…

입력 2013-06-17 10:45:22

4곳 공사 한꺼번에 진행…온종일 굴착기 굉음·먼지, 방진막·살수 등 규정

대구 수성구 만촌동 두봉마을 연립주택 공사현장. 건설업체가 방진막을 설치하지 않은 채 공사를 강행하고 있어 주민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 우태욱기자 woo@msnet.co.kr
대구 수성구 만촌동 두봉마을 연립주택 공사현장. 건설업체가 방진막을 설치하지 않은 채 공사를 강행하고 있어 주민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 우태욱기자 woo@msnet.co.kr

이달 10일 대구 수성구 만촌3동 두봉마을. 야트막한 산으로 둘러싸인 골짜기 마을에 굴착기 엔진소리가 울렸다. 굴착기가 돌 섞인 땅을 내리찍자 귀를 찢는 마찰음이 났다. 공사가 한창인 건물에는 인부들의 망치가 못에 부딪히면서 날카로운 쇳소리가 났다. 다른 인부가 거푸집을 뜯어내 10여m 아래로 떨어뜨리자 굉음이 터져 나왔다. 한쪽에선 쇠를 절단하는 소리가 귀를 때렸다. 굴착기가 도로 옆 1.3m 높이의 옹벽을 허물자 시멘트 가루가 날렸다. 그 옆을 흰머리에 등이 굽은 할머니가 지팡이를 짚은 채 아슬아슬 지나갔다.

도심 속 작은 산골인 두봉마을의 주민들이 난개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일부 건설업체는 법이 정한 규정을 어긴 채 공사장 먼지와 소음을 유발하고 있지만 행정당국의 단속은 전혀 없는 실정이다. 또 골짜기 형태의 지형으로 인해 불편을 겪었던 차량 통행이 공사장 차량으로 인해 더욱 극심한 정체를 일으키고 있다.

◆공사 먼지'소음 무방비 노출

수성구 만촌동 수성대학교 뒤편에 잡고 있는 두봉마을은 달구벌대로에서 800여m가량 남서방향으로 가면 나온다. 280여 가구 주민들이 모여 사는 이곳은 산으로 둘러싸여 녹지 등 자연환경이 잘 보존돼 있다.

이곳에 공사가 시작된 것은 지난해 7월부터였다. 현재 연립 2곳과 다가구 주택 3곳, 유치원 1곳이 건축허가를 받았고, 이 중 다가구주택 1곳(285.79㎡'8가구)은 사용승인이 떨어졌다. 연립주택 2곳과 다가구주택 2곳은 골조공사가 진행 중이고, 유치원은 아직 공사를 시작하지 않았다. 또 다가구주택 2곳이 건축허가를 구청에 신청해 놓은 상태다.

문제는 좁은 마을 안에서 4곳의 공사가 한꺼번에 진행되면서 주민들이 먼지와 소음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현재 공사 중인 연립주택(지상 4층, 지하 1층)은 각각 연면적 1천788㎡(16가구)와 1천589㎡(16가구)로 대기환경보전법의 적용(연면적에 1천㎡ 이상)을 받지만 규정을 지키지 않고 있다.

연립주택 공사장은 법에 따라 먼지를 막는 방진막을 설치해야 하지만 이를 무시하고 공사를 강행하고 있었다. 지상은 물론 층층마다 방진막을 설치해야 함에도 대기에 노출된 상태에서 작업을 하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시멘트를 양생하고 난 뒤 거푸집을 떼어내면서 시멘트가루가 공기 중으로 날렸다. 돌과 토사를 10여m 높이로 쌓아두면서 방진덮개를 설치하지 않아 바람이 불면 그대로 먼지가 일어나 인근 주택으로 날아들었다.

토사와 시멘트 등을 싣고 내릴 땐 물을 뿌리는 시설(살수 반경 5m, 수압 3㎏/㎠)을 갖춰야 하지만 50원짜리 동전 굵기의 고무호스로 물을 뿌리는 것이 전부였다. 이날 옹벽 일부를 철거하면서 물 호스로 뿌려 먼지를 가라앉혔고 이 과정에서 나오는 흙탕물은 따로 모아 배출허용기준치 이내로 처리해야 하지만 경사진 도로 아래로 그대로 흘려보냈다. 또 공사장을 오가는 자동차의 바퀴를 씻는 시설을 운영해야 하지만 이 역시 없었다.

고철 등을 절단할 때는 쇳가루를 날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실내에서 작업을 하거나 간이 칸막이를 쳐야 하지만 전혀 지켜지지 않았고, 10분간 평균 풍속이 초속 8m 이상이면 작업을 중지해 먼지 발생을 억제해야 하지만 풍속을 측정하는 장비가 없었다.

공사장에는 방음벽도 전혀 없어 주민들은 고통을 겪고 있다. 50년 가까이 마을에서 살아온 박매화(75'여) 씨는 "아침부터 공사장 소음에 몇 달째 시달리다 보니 마음도 덩달아 불안해져 이웃 간에 목소리를 높이는 일이 잦아진다"며 "그동안 교통이 불편해도 해 질 녘에 산에서 노루가 내려올 정도로 자연환경이 좋았는데 이젠 먼지가 날아들어 빨래를 늘어놓지 못할 정도"라고 말했다.

김모(44'여) 씨는 5년 만에 아이를 가졌고 9월이 출산예정일이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계속된 공사장 소음으로 노심초사하고 있다. 김 씨는 "창문을 열어 환기를 하고 싶어도 시끄러워 엄두도 내지 못한다"며 "화물차량이 지날 땐 집안까지 고스란히 전해지는 소음과 진동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뱃속 아이에게 나쁜 영향을 미칠까 봐 걱정"이라고 했다.

◆교통 불편 더 심해질 듯

두봉마을의 진입로는 오성중'고등학교 옆을 지나는 너비 5여m, 길이 200여m의 도로가 전부다. 이 도로는 한쪽에 주차된 차들이 늘어서면 승용차 2대가 마주 운행하기도 힘들다. 주민들은 현재 허가된 연립 및 다가구주택(44가구)과 유치원 건물(994.8㎡), 허가신청을 한 다가구주택(16가구) 등이 들어서면 마을 인구가 늘어 진입로가 더욱 붐빌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달 3일 주민들이 나서서 자체 교통량 조사를 했다. 만촌3동 난개발 반대 주민대책위원회에 따르면 오전 7시부터 오후 11시까지 마을을 오가는 차량은 2천28대였고, 특히 오전 7~9시와 오후 5~7시가 각각 403'330대로 가장 붐볐다. 출'퇴근 시간에 분당 3.4대와 2.8대가 다니는 셈이다. 특히 등교시간 오성중'고등학교 일대는 10~15대가 밀려 정체가 벌어지기도 한다.

42년째 두봉마을에서 살고 있는 이판옥(65'여) 씨는 "아침마다 출근하는 사람과 등교 학생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고 오후면 마을 도로를 공사장 화물차들이 차지해 정작 주민들이 이용하지 못한다"며 "앞으로 다가구주택이 들어서면 교통 혼잡은 불을 보듯 뻔하다"고 했다.

6년째 이 마을에서 살고 있는 이모(55) 씨는 "아침 출근할 때 25분 거리가 공사 후에는 40~45분까지 소요된다"며 "좁은 길에서 마주 선 차들이 양보를 하지 않고 버티면서 얼굴을 붉히기도 한다"고 했다.

현행 교통영향평가법에는 신축 아파트나 빌딩 등은 교통영향 평가 대상이지만 다가구주택 등은 평가 대상이 아니다. 문제는 오성중'고등학교와 아파트 단지, 수성대학교, 산지에 둘러싸인 두봉마을의 특성상 규모가 작은 원룸이나 연립주택이 들어서더라도 심각한 교통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것.

대구 수성구청 관계자는 "현행법상 건축허가 신청이 들어오면 적법성을 따져 허가를 내 줘야 하는 입장"이라며 "앞으로 새로 짓는 건물에 대해선 주민과 건축주가 함께 참여하는 민원배심제에서 심의하겠다. 내년에 예산 약 30억원을 투입해 도시계획에 예정된 마을로 들어가는 동쪽 길을 추가로 낼 것"이라고 했다.

서광호기자 kozm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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