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 80년대 북한 외교의 중심에는 태권도가 있었다. 당시 북한은 우리보다 더 체계적으로 태권도를 수출하면서 제3세계 국가들과 국교를 터 나갔다. 북한 태권도 보급의 중심에는 최홍희(1918~2002)가 있었다. 함경도 태생이긴 하나 남한에서 6군단장을 거쳐 1962년 예편한 인물. 군인 시절부터 다양한 무술을 수련한 그는 1955년 전통 격투기를 하나로 묶어 '태권도'란 명칭을 처음 사용했고, 1966년 국제태권도연맹(ITF)을 만들었다.
박정희 대통령과 5'16을 논의할 정도로 친한 사이로 주말레이시아 대사와 대한태권도협회 회장을 지냈으나 동백림 사건 등에 연루되면서 1972년 캐나다로 망명했다. 그가 만든 ITF가 위세를 떨치자 우리나라는 1973년 세계태권도연맹(WTF)을 만들어 대항했다. 이후 우리나라의 괄목할 만한 경제성장으로 WTF가 국제올림픽위원회(IOC) 공식 기구로 인정받고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는 성과를 거뒀지만 우리는 한동안 ITF에 고전했다. 최홍희는 수시로 북한을 드나들면서 공산권 국가를 중심으로 한 태권도의 세계화에 공헌했다. 투병 생활을 하다가 북한에 들어간 그는 2002년 오늘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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