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동에서] 딸을 서울로 보낸 이유

입력 2013-06-04 07:40:44

A씨는 고등학교 3학년 딸을 둔 대구의 50대 가장이다. 그는 요즘 서울 집값을 알아보는 중이다. 교사가 되려는 딸을 서울교대에 보낼 계획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각종 흉흉한 사건이 많은 때라 딸만 서울로 보내기가 걱정되어, 부인까지 서울로 올려 보낼 생각이란다. 주말부부를 계획 중인 그는 주말부부 선배인 내게 전화를 해 주말부부 생활의 장단점을 물어왔다.

기자는 몇 가지 이유에서 그의 주말부부 결정을 반대했다. 주말부부 생활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 점, 생활비가 두 배가 아닌 세 배가 든다는 점, 서울 집값이 녹록지 않다는 점, 그리고 제일 큰 이유는 초등학교 교사를 원한다면 대구에도 충분히 좋은 교육대학이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오히려 서울에서 교대를 나와 교사가 될 경우엔 대구보다 모든 면에서 상대적으로 힘든 점이 많다는 생각에서다. 발령지역이 넓어 대구보다는 이동할 때마다 출퇴근 시간 변동도 클 수 있다는 것도 반대 사유 중 하나였다.

하지만 A씨는 딸과 부인을 서울로 보내야 하는 다른 중요한 이유가 있다고 털어놨다. 바로 대구에서는 '괜찮은' 신랑감을 찾을 수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잠시 충격으로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그는 "다 늙어서 부부가 떨어져 생활해야 하고, 물가가 배는 비싼 서울에 딸을 유학까지 보내는 이유가 너무 생뚱맞지요"라고 했다. 대구에서 학교 다니면 안심도 될뿐더러 생활비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고, 가족까지 생이별할 일이 없겠지만 딸의 장래를 생각한 어려운 결정이었다고 했다.

결혼시장에서 상한가를 치고 있는 선생님이 될 딸의 눈높이에 맞는 배필을 구하기 위해 미리부터 서울로 상경해야 하는 상황, 이것이 2013년 대구의 현실이다.

얼마 전 지인으로부터 서울역과 광화문 인근의 호텔 커피숍에는 지역에서 상경한 노처녀들이 맞선을 보는 사례가 허다하다는 얘기를 언뜻 들은 적이 있다. 그땐 웃으면서 한 귀로 흘렸는데 A씨의 사연을 접하고 보니 '언제부터 대구가 이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전국 3위 도시라는 위상은 이미 오래전 얘기가 됐고, 조만간 4위 자리도 내줘야 할지 모르는 처지다. 경제 사정은 어떨까. 꼴찌 GRDP는 일단 제쳐 두고라도 생산은 전국 꼴찌요, 소비도 7대 도시 중 최하위로 대구는 경제 두 바퀴가 모두 푹 꺼진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다. 마땅한 일자리가 없어 젊은이들의 '탈(脫) 대구' 현상은 해마다 심각해지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냥 흘려 넘긴다. 말은 위기를 이겨내자고 하지만 전혀 변화하지 않는다. 변화하면 죽는 줄 안다. 매번 선거를 치를 때마다 나오는 뒷말은 '손가락을 잘라버리겠다'는 말이다.

요즘 여의도 정치권에선 대구를 완전히 바꿔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1년 앞으로 다가온 내년 지방선거를 전환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지역을 살릴 수 있는 마지막 남은 치료제라는 절규다.

1년 후 이맘때엔 지역에서 '사람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차선을 택했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으면 한다. 대구를 완전히 바꿀 수 있는 최선을 선택했으면 좋겠다. 언제까지 '보수 꼴통 도시'에서 살 것인가. 막장까지 내려앉은 지역 경제와 정치적 위상(位相) 그리고 풀죽은 기(氣)를 살리려면 어떤 투표를 해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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