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다'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남의 물건이나 돈 따위를 나중에 도로 돌려주거나 대가를 갚기로 하고 얼마 동안 쓰다'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의미가 추상적인 것으로 확장이 되면 '지혜를 빌리다, 일손을 빌리다'와 같이 '남의 도움을 받거나 사람이나 물건 따위를 믿고 기대다'의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고, 인사말에서 흔히 쓰는 '이 자리를 빌려'와 같이 '일정한 형식이나 이론, 또는 남의 말이나 글 따위를 취하여 따르다'의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흔히 '이 자리를 빌어'라고 하는데 이것은 잘못된 표현이다. 이때 사용하는 '빌다'는 '양식을 빌다'와 같이 '남의 물건을 공짜로 달라고 하여 얻다'의 뜻이다) 빌렸으면 빌린 것을 소중하게 다루다 돌려주어야 하고, 빌려 준 사람에게 미안하고 고마운 감정을 갖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인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누구나 다 아는 이 쉬운 말인 이 '빌리다'를 잘못 사용하여 생기는 문제들이 의외로 많다.
학교에서 약한 아이들에게서 금품을 빼앗은 가해자들에게 왜 그랬느냐고 물어보면 대부분의 가해 학생들은 "빌린 건데요" 이렇게 대답을 한다. 가해 학생의 학부모들은 아이의 말만 믿고, '애들 사이에 돈 좀 빌릴 수도 있는 건데, 이게 무슨 학교 폭력이냐'고 항변을 한다. 그러나 실제 빌렸다는 상황을 보면 "야, 돈 좀 빌려 줘" "어, 없는데" "그럼 있으면 10원 나올 때마다 한 대씩 맞는다" 이런 식이다. 가해 학생들이 돌려줄 것에 대한 약속도 하지 않을뿐더러 돌려줄 생각도 없으면서 '빌려 달라'고 한 것은 문제가 생겼을 때 빠져나가기 위한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어릴 때부터 경험해 왔기 때문이다.
이곡의 '차마설'이나 이강백의 희곡 '결혼'에서는 '빌리다'의 의미를 철학적인 차원에서 이야기를 한다. 이 작품들에서는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들-돈이나 권력뿐만 아니라 심지어 목숨마저도 영원히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는 원래대로 돌려주어야 한다는 점에서 잠시 빌린 것이라는 생각을 보여주고 있다.
역사를 살펴보면 우리가 존경할 만한 인물들은 모두 자기가 빌린 것을 잘 알고 있었던 인물이었다. 김수환 추기경은 나라를 좌우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어도 그것을 자신에게 빌려 준 사람들을 위해 올바르게 쓰고, 그대로 돌려주었기에 길이 존경을 받는다. 대구대 설립자 이영식 박사는 죽을 고비를 넘기고 덤으로 받은 목숨을 가장 낮은 곳의 사람들을 위해 열심히 살다 가셨다. 그러나 현재 누리고 있는 '갑'의 위력이 다른 사람의 권력인 줄도 모르고, 그것도 5년 뒤에 반납해야 하는 잠깐 빌려 온 것인 줄도 모르고, 영원히 자기 것인 양 착각 속에 남용을 하는 사람들의 말로는 비참할 수밖에 없다. 우리 속담에 '정승 말이 죽으면 문상 가도 정승 죽으면 안 간다'는 말이 있다. 권력이라는 것이 바로 그런 것이다.
민송기<능인고 교사 chamt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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