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법연화경 69,290字 금사경…김완길 천진필방 대표

입력 2013-05-17 07:06:55

16폭 병풍으로 전시

김완길 천진필방 대표가 제작한 16폭 병풍 묘법연화경 사경의 일부.
김완길 천진필방 대표가 제작한 16폭 병풍 묘법연화경 사경의 일부.

"세계적으로도 우리 사경 작품이 가장 유명해요. 임진왜란 때 국외로 유출된 고려시대 사경 작품은 지금 수백억원을 호가하죠. 하지만 그 전통의 맥이 거의 끊기고 있어 아쉬워요."

봉산문화거리 내 천진필방 김완길 대표는 한국사경연구회 대구지부 사무국장이다. 대구에서 처음으로 한국사경연구회의 전시가 26일까지 봉산문화회관 2, 3층 전관에서 열린다. 그는 이번 전시에서 묘법연화경 6만9천290자를 금 사경으로 써 16폭 병풍으로 선보인다.

김 씨는 20년 전, 천진필방을 운영하던 자형을 따라 서실에 배달을 갔다가 첫눈에 서예에 빠져들었다. 공학도이던 그는 서예에 반해 무작정 경기도에서 대구로 내려왔고, 자형을 도와 일을 했다. 그 후 필방을 인수받아 운영하고 있다. 이제 그 많던 필방도 단 6곳만 남아 명맥을 유지한다. 천진필방은 그 가운데서도 역사가 가장 깊다.

낮에는 생업을 위해 장사를 하고, 밤에는 글씨 쓰는 일을 오랫동안 했다. 가게 안에서 틈틈이 글씨를 쓰기 위해 작은 글씨를 쓰기 시작했고, 1998년에는 반야심경을 하루 한 번씩 천 번을 쓰기도 했다.

"어느 날 화엄경을 쓴 어떤 스님의 사경 전시회를 본 적이 있어요. 그것을 눈으로 익혀 혼자 독학했어요. 선 긋는 법을 눈으로 익혀 인쇄해 나만의 사경 종이를 만들곤 했어요. 그게 인기가 많아 많은 분들이 사가기도 했지요."

2007년에는 통도사박물관에 보관된 1500년대 감지에 금으로 쓴 묘법연화경을 보고, 그 속에 빨려 들어갔다. 두 시간 동안 넋을 놓고 바라봤다. 그래서 순금으로 금강경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던 그는 2009년 큰일을 세 번이나 당했다.

"어머니 같던 누나가 갑자기 돌아가셨어요. 100일 후 아내가 세상을 떴고, 아내의 49재가 끝나자마자 어머니가 돌아가셨어요. 정말 큰 절망의 시간이었죠. 150여 일 만에 가장 사랑하는 사람 세 명을 떠나보내고 나니, 삶과 죽음이 손바닥 앞뒤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힘든 일을 겪으면서 그는 더욱 사경에 매달렸다. '사경이 아니었으면 못 버텼을 것'이라고 회상한다.

사경 덕분인지 대구시서예대전 우수상, 특선, 매일서예대전 특선, 대한민국서예대전 지난해와 올해 연달아 특선을 받는 등 서예 실력도 인정받았다. 그는 사경의 맥이 끊어지고 있는 것이 무엇보다 안타깝다.

"사실 고려시대 사경의 비밀은 끊어졌어요. 작가마다 금색을 내는 방법 등을 연구해야 해요. 그래서 고려시대 아름다움을 재현하지 못하는 것이 아쉬워요. 고려시대에는 중국이 고려에 스님을 파견해서 비법을 전수받을 만큼 세계 최고 수준이었죠. 많은 젊은 사람들이 사경에 관심을 가져줬으면 합니다. 그래서 우리 전통문화의 대가 끊기지 않길 바랄 뿐입니다."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최신 기사